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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일밤이 걱정되는 이유

부진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프로그램 이름을 <일밤>으로 바꾸고 전면개편을 단행한다. 기존 코너들을 모두 폐지하고 <신입사원>과 <나는 가수다>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일밤>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코너들을 너무 자주 교체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사실 기존의 코너들이 언젠가는 잘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계속 이어가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일밤>엔 확실히 전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지금의 방향이어야 했을까?

<신입사원>은 아나운서를 공개 오디션으로 뽑는다는 내용이다. <슈퍼스타K> 열풍의 오디션 유행을 그대로 잇는 것이다. MBC는 <슈퍼스타K>가 성공하자 곧바로 <위대한 탄생>을 편성한 바 있다. 이것은 케이블TV에서 성공한 포맷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오늘을 즐겨라>도 오디션 느낌의 내용으로 바꿨다. 발라드, 트로트, 락 등 장르를 바꾸어가며 노래경연을 벌이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지금 준비되는 새 프로그램에선 아나운서까지 오디션의 영역을 넓힌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첫째, 너무 시류에 노골적으로 편승한다는 점, 둘째,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며 탈락하는 서바이벌 형식의 자극성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점, 셋째, 인권침해의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셋째의 경우 지상파 방송이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살 수 있다.

가수가 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다. 굳이 방송의 공개 오디션을 통하지 않아도 톱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방송 오디션에 지원한 사람들은 프로그램으로 인해 당할 피해까지 스스로 감수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상파 아나운서의 경우는 방송3사의 독점적 구조다. 그 방송사가 오디션을 공개 형식으로 치르겠다면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MBC는 <신입사원> 지원자들에게 '개인 정보를 포함한 기록된 모든 사항을 프로그램에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MBC에 부여한다',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등을 포함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 'MBC가 필요에 의해 나의 초상과 모든 자료들을 사용, 수정, 배급할 수 있으며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계약할 수 있음', 'MBC가 나의 사생활 침해, 신체적 정신적 손상에 금전적으로 보상해야 하는 의무가 없음' 등의 내용에 동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건 정상적인 동의라고 할 수 없다. 독점적 지위에 있는 대형 기획사가 압도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이용하여 연예인 지망생과 맺은 불공정 계약이 정상적인 계약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점적 지위의 방송사가 아나운서 지망생에게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를 감수할 것에 동의를 받는 것도 제대로 된 동의가 아닌 것이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사생활이 어떤 식으로든 까발려지기 일쑤이며, 뜻하지 않게 대중의 공적으로 찍히는 사람까지 등장할 수 있다. <슈퍼스타K> 때는 참가자의 아버지가 눈물로 호소하는 일까지 발생했었다. 방송사 아나운서 시험에 지원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피해를 감수해야만 하는가?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되고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되는 사람들도 물론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단 한 명이라도 피해자가 생겨난다면 프로그램의 정당성은 사라진다. 이렇게까지 해서 시청률을 올려야 할까?

<나는 가수다>의 경우는 신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가수가 경연을 벌여 한 명씩 탈락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오늘을 즐겨라>의 내용이었던 노래 경연이 '본격 버전'으로 확장된 느낌이다. <슈퍼스타K>나 <세시봉> 이후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각별한 흥행코드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런 코드를 차용한 것이기도 하다.

<오늘을 즐겨라>에선 노래를 부른 참가자에게 독설이 쏟아졌었다. 여성 참가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심판대에 오르고, 경쟁을 하고, 판정을 듣고, 무참히 탈락하는 과정의 '짜릿함'에 지나치게 매몰된 느낌이었다.

물론 <신입사원>이 대표적인 스펙경쟁 부문인 아나운서 시험에 능력주의를 도입한다든가, <나는 가수다>가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는 가수 본래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케 한다는 의미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프로그램의 새 방향을 이렇게 서바이벌 경쟁으로만 잡았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점점 각박해지고 있는 경쟁사회다. 주말 TV에서까지 온 가족이 모여앉아 치열한 경쟁을 보며 전의를 다져야 할까?

MBC 주말 뉴스데스크는 요즘 '예능데스크' 소리를 듣고 있다. MBC는 구하라가 달리기로 인기를 얻자 초대형 아이돌 육상대회를 하더니 급기야 이번 설엔 아이돌 수영대회까지 개최하기도 했다. <일밤>의 개편흐름도 그렇고, MBC의 방향성이 전체적으로 자극성 쪽으로만 기우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부디 <일밤>이 이런 걱정을 기우로 만들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