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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불한당의 센스만점 간접광고

 

불한당의 센스만점 간접광고


드라마 <불한당>을 보다 깜짝 놀랐다. 아래 장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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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그 이름도 정겨운 태안 집. 전화번호까지 선명하다.


정말로 이런 회집이 있을까? 그건 모르겠다. 불한당 제작진이 왜 이런 차를 드라마에 내보냈을까? 그것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일부러 그랬다고 믿고 싶다.


태안에는 죄책감이 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 당시 언론들이 ‘태안기름유출’이라고 알려주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엑손 발데즈호 사고라고 하지 알라스카기름유출이라고 하지 않는다. 환경재앙에 어느 지역 이름이 붙으면 그 지역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이 생긴다. 반대로 기업 이름이 붙으면 기업이미지가 손상된다. 삼성중공업 예인선도 그냥 예인선이라고만 보도됐었다. 회사 이름들이 다 빠지고 지역 이름만 남으니까 마치 어느 지역에 발생한 천재지변같은 이미지가 발생한다.


그 바람에 태안 지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해안가에서 먼 동네 농산물 가치도 뚝 떨어졌다고 한다.

 

이름은 중요하다. 사람은 이름에서 받은 인상으로 사건의 내용까지 판단해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성희롱 사건은 ‘우 조교 사건’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가 이름을 뒤집어썼다. 언론이 그 피해자를 두 번 죽인 것이다.


이것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도리어 피해자한테 ‘여자의 행실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추궁하는 한국 사회의 야만성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작명이었다.


옛날엔 성추행을 당하다 자기 입 속에 들어온 남자의 혀을 물어뜯고 도망친 여성이 체포된 사건도 있었다. 그때 나온 유명한 얘기가 “법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였다. 그 여성이 과거에 유흥업소에 근무한 전력이 있고 사건 당일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오히려 비난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는 사회적 폭력이 종종 나타난다. 연쇄 성폭행 가해자들은 멀쩡히 잘 사는데 피해자가 지역에서 왕따 신세가 된다든가 하는 일들 말이다.


태안 기름유출이란 작명도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를 덮어씌우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이런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언론이 지어준 이름에 놀아났으니 나도 죄인이다.


농수산물 생산지역엔 웬만하면 지역 이미지에 타격이 갈 만한 악명을 씌우지 않는 것이 국제적인 관행이라고 한다. 당연하다. 한번 이름이 붙으면 그 지역 주민들이 모두 장기간 피해를 입게 되지 않겠는가. 이 당연한 일을 왜 그땐 생각하지 못했을까.


수도권매립지는 원래 이름이 **매립지였는데 해당 지역 주민들의 민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건을 제대로 불러주지 못한 한국사회나 한국 언론은 모두 반성해야 한다.


방송도 거기에 단단히 일조했다. 그러니까 태안에 사죄하는 간접광고는 얼마든지 해도 된다. 간접광고는 원래 불법이지만 태안에는 당분간 일부러 해드려야 한다. 한국사회에 의해 훼손된 지역 브랜드 가치가 회복될 때까지.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한동안 수목 드라마 중에서 불한당을 가장 좋아했었는데, 이야기가 시한부 생명 신파로 가는 바람에 맥이 좀 빠졌다. 드라마 초반부터 장혁이 코피를 종종 흘리길래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하고 바랬었는데 설마가 현실이 됐다.


시한부 생명 빼면 드라마 소재가 없나? 하도 우려먹어 이젠 맹탕이 돼버린 소재를 또 쓰다니 센스빵점이다. 하지만 태안 간접광고는 센스만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