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연말 시상식 시즌도 구태의연하게 시작되고 말았다. 얼마 전에 MBC 연기대상에 하얀거탑의 김명민과 이산의 이서진이 나란히 대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길래 황당했었는데, 이번에 본격적으로 거행된 연말 가요 시상식도 결국 구태를 재연하고 말았다.


바로 음악 없는 음악상.

연기 없는 연기상.


2007 MKMF(Mnet KM Music Festival)를 두고 하는 말이다. 슈퍼주니어가 MKMF에서 올해의 가수상을 받았다. 원래 뮤직비디오 케이블이 일반 음악상보다 좀 더 비음악적인 면에 치중하기는 한다. 뮤직비디오라는 게 원래 시각성과 소비상품성이 강하니까.


미국에서도 MTV 등장 이후로 ‘Video Kill The Radio Star'라는 비명이 터져 나왔으니 뮤직비디오 케이블의 속성을 알 만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슈퍼주니어가 대상을 받은 건 좀, 인간적으로, 상식적으로 너무하다. 이럴려면 Mnet KM Music Festival에서 Music을 빼고 그냥 방송연예페스티벌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게 좋겠다.


음악상이라고 이름을 붙여놓고 음악인 같지 않은 기획상품한테 상을 주는 이율배반은 그만 보고 싶다. 난 지금 슈퍼주니어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기획사가 만든 연예상품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기획상품보다 음악인이 더 우월할 이유가 없다. 단지 음악상은 음악인한테 가는 것이 맞다고 얘기할 뿐이다.


음악은 당연하게도 음악인이 하는 것이지 기획상품이 하는 것이 아니다. 기획상품은 음악 대신에 방송과 광고와 영화와 인기와 돈을 쓸어 담지 않는가. 왜 하지도 않는 음악의 상까지 독식해야 한단 말인가? 이건 너무하다.


클래지콰이와 체리필터와 에픽하이가 하위 부문 상을 받는 시상식에서 슈퍼주니어가 대상을 받는 것엔 실소밖에 안 나온다. 음반시장 불황 타령을 그렇게 일삼는 가요계다. 그 불황은 결국 그들 자신이 자초한 것이라는 게 이번에 다시 밝혀졌다. 자기들 스스로 음악인을 음악판에서 배제하는데 국민이 그걸 따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음악은 사라지고 찰나의 쾌락을 위한 디지털 음원과 방송연예인 배출 창구만 남았다. 옛날엔 음악감상실이라는 업태의 가게들도 성업한 적이 있었다. 요즘 연예인들의 노래를 누가 감상하겠는가. 감상할 가치가 없는 노래들이 음악상을 받는 풍토에서 음악이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MKMF 방송을 잠깐 봤는데 가요시상식에 팝송이 나오는 풍조도 여전했다. 이다해가 아이 러브 랙앤롤 을 부른다고 해서 나름 좋게 봐주려고 했으나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한다면 난 이다해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하지만 이번 시상식에 나온 아이 러브 락앤롤은 그것이 팝송이라는 점을 제쳐놓고라도, 워낙 노래를 상업적 기획물처럼 바꿔 놓아 들어주기가 괴로웠다. 아이 러브 락앤롤이라는 원곡도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노래다. 그걸 더 한국식으로 바꿔서 그야말로 슈퍼주니어 수준으로 만들었다. 음악은 없고 쇼만 남은. 내가 쇼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음악상에선 음악을 듣고 싶다.


어떤 신문사는 “빅뱅 슈퍼주니어 등으로 대변되는 아이돌 가수의 새로운 희망을 봤다는 점 등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좋은 노래가 나와야 희망이 보이지, 음악과 상관없이 상을 주는 음악상에서 무슨 희망을 봤단 말인가? 희망과 실망, 혹은 희망과 절망이란 단어의 뜻을 헷갈리는 건 아닌가?


한국 시상식의 고질적 병폐인 나눠먹기 행태도 여전했다. 올해의 가수상은 슈퍼주니어, 올해의 노래상은 빅뱅, 올해의 앨범상은 에픽하이다. 기묘하게 안 겹친다. 슈퍼주니어는 노래와 앨범 말고 무엇을 기준으로 올해의 가수가 된 것일까?


SG워너비, 클래지콰이 등 다른 가수들도 저마다의 장르상을 받았다. 음악 없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웬 그리 장르가 많은 건지. 겹치지 않고 골고루 하나씩 다 배정받았다. SG워너비에게 배정된 상은 R&B 소울 부문이있는데 SG워너비가 R&B를 하는 줄은 내 이번에 처음 알았다.


공정성 시비도 변하지 않고 찾아왔다. 네티즌 투표가 기준인 옥션네티즌 인기상에서 신혜성이 1위, 김동완이 2위를 기록했으나 상패는 슈퍼주니어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이민우가 1위에 올랐던 ‘옥션 스타일상’은 아예 사라졌다고 한다. 주최측의 기분에 맞춰 상이 왔다갔다하는 것이다.


당대 대중문화의 첨단을 달린다는 뮤직비디오 케이블이 문화적 첨단은 나몰라 하고 구시대의 관행은 앞장서서 재현하고 있으니 시상식 규모만 키우면 뭐하나. 이건 뭐 ‘그때 그 시절, 옛날 TV'도 아니고. 어떻게 해마다 비슷한 행사를 하고 해마다 비슷한 욕을 먹나. 혹시나가 역시나로 변한 실망과 절망을 해마다 선사해주는 시상식. 참 대단하십니다들.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