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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짝 출연자 자살, 우리는 책임 없나

 

S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짝> 출연자의 자살이 한국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든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도 이어진다. 우울증 등 개인적 문제인지, 아니면 프로그램 속에서 어떤 마찰이 있었는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경찰수사가 진행중이다.

 

현재로선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크게 보면 리얼리티 혹은 관찰예능 프로그램의 구조적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외국에서도 2007년에 <헬스 키친>에 출연했던 일반인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2010년엔 고든 램지의 <키친 나이트메어>에 출연했던 사람이 자살했고, 2011년엔 <베벌리 힐스의 주부들> 출연자가 자살했다. 그 외에 <틴 맘>, <러브 서바이벌> 등의 출연자들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폭스TV의 요리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자는 방송 1년 후에 자살했는데, 가족들은 고인이 방송 당시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해외에서 이미 이런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언제든 일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있는 그대로 날것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공개하는 방송이다. 한국에선 <무한도전> 이후 나타난 리얼버라이어티가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때까지는 연예인이 주역이었고, 리얼리티와 예능적 설정이 공존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오디션 열풍이 불면서 일반인 출연자들이 합숙하며 울고 웃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그이후 리얼버라이어티가 관찰예능으로 진화하면서 본격적인 리얼리티의 시대가 열린다. 일상이 예능으로 소비되는 시대, 대중이 엿보기라는 쾌락을 집단적으로 탐닉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리얼리티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예능감이 중요하지 않았고, 따라서 ‘유강천하’로 상징되던 스타MC의 헤게모니가 유탄을 맞았다. 방송에서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는 비스타급 연예인, 아이들, 그리고 일반인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다. 가정사, 생리현상, 애정라인 등 카메라에 의해 공개되는 영역은 점점 넓어진다. <짝> 사태는 이런 흐름 속에서 터졌다.

 

 

 

리얼리티 관찰예능은 글자 그대로 카메라가 실제의 생활모습을 관찰해서 공개하는 것인데, 이것은 말만 다를 뿐이지 사실상의 감시다. 어떤 순간이든 항상 타인의 시선 앞에 노출되는 생활. 그것은 막대한 스트레스를 수반한다. 혼자서 편안하게 긴장을 풀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의 삶에 익숙한 연예인조차 그런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아쉬울 것 없는 스타급 연예인들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을 꺼린다.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은 연예인보다 훨씬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짝>은 6박7일간이나 촬영이 이어지기 때문에 출연자들의 고통이 극심했을 것이다.

 

단순한 사생할 공개만으로도 스트레스인데, 리얼리티 프로그램엔 더 가혹한 장치가 있다. 바로 ‘악마의 편집’이다. 편집으로 출연자들의 행동이나 성격을 극대화해 최대한 자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기법인데, 이것 때문에 출연자들은 신상털기 등 대중의 집단공격을 받게 된다. 대중은 리얼리티 출연자를 하나의 예능 캐릭터로 인식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사람들을 경악시켰던 ‘윤후안티카페’ 사건은 그래서 터졌다. 이렇게 인격이 무시되는 구조는 일반인 출연자에게 극한의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재미를 위해 보통 서바이벌 경쟁 구도를 활용한다. <짝>은 연애 서바이벌이었는데, 짧은 시간의 압축적인 경쟁구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카메라는 출연자가 무참하게 마음의 상처를 당한 순간까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런 일을 며칠에 걸쳐 계속 당하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현실감이 사라지면서, 마치 온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치부가 까발려진 듯한 절망감까지 들게 된다. 이런 구조가 개인의 내부적인 취약성, 혹은 어떤 특정한 계기와 맞물렸을 때 사태가 터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번 일은 리얼리티 광풍에 편승한 방송사, 그리고 그 광풍을 만들어낸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