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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개과천선 조기종영, 특히 아쉬운 이유

 

<개과천선>의 조기종영이 결정됐다고 한다. 정말 아쉬운 소식이다. 왜냐하면 <개과천선>은 요즘 <정도전>과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선 <정도전>의 전성기였던 ‘대하드라마 이인임’ 시절을 방불케 하는 몰입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하드라마 이인임’이 정치적 격돌을 손에 잡힐 듯한 구체적인 묘사로 몰입감을 극대화했다면, <개과천선>은 최근 한국의 부조리를 박진감 넘치게 묘사해 경탄을 자아냈다.

 

시작은 재벌의 부실 사채 판매 문제였다. <개과천선>은 대기업이 부실사채 판매를 어떤 식으로 ‘설계’하고 실행에 옮기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실화 추적 프로그램 이상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국민들에게 부실사채를 넘겨 돈을 챙기고, 회사를 법정관리로 넘겨 채무를 청산한 다음, 챙긴 돈으로 깔끔해진 회사를 다시 장악한다는 놀라운 꼼수가 펼쳐지는 동안 시청자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번 주엔 키코 사태를 연상시키는 은행의 파생상품 영업 문제까지 그렸다. 키코 사태는 그 피해자가 많고 국민경제상의 심각한 사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금융 문제였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그렇게 많이 주목받지는 못했었다. <개과천선>은 이번 주에 대형 은행이 자국의 중소기업을 상대로 약탈적 영업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정면으로 파고 들었다. 근래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생생한 묘사였다. 작가의 작품을 준비하면서 흘린 땀이 느껴진다.

 

또, <개과천선>은 한국 사회 고질병 중의 하나인 법조계 마피아가 작동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려준다. 이번 주만 해도 중수부장 출신의 전관 변호사와 차기 대법원장 제자인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의 대결이 그려지며 한국사회의 심층을 파고 들었다.

 

<개과천선>은 한국사회의 또다른 권력으로 떠오른 로펌의 문제도 그린다. 일반 검사는 물론이고, 장관이나 대법관 인선까지 좌지우지하는 대형 로펌의 권력이 생생하게 표현된 것이다. 그런 로펌과 재벌, 금융권 등이 어떻게 한 덩어리가 돼서 움직이는지가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고발된다. 바로 그것이 한국의 민낯이다.

 

극중에서 김명민은 언제나 치이고 사는 서민들을 보며 ‘이 세상에 순진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고 한탄한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순진한 서민들’을 위한 명품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김명민도 기억에 남을 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처음에 자신감 넘쳐보이던 그는, 기억을 잃은 뒤로 목소리톤을 완전히 바꾸면서 전혀 다른 사람을 연기했다. 가히 ‘대하드라마 이인임’의 박영규 이후로 최고의 연기였다고 할 수 있다.

 

종합하면, 사회적 의미와 완성도, 연기력 등 모든 면에서 근래 최고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요즘 사회드라마 열풍이 불었는데 그 중에서도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개과천선>이 별다른 주목도 못 받고 조기종영으로 사라지는 것이 특별히 아쉬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