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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발끈한 촬영감독님들 그건 오바입니다

 

발끈한 촬영감독님들 그건 오바입니다


우리나라는 힘든 나라다. 힘 센 사람 표현하기가 힘들어 힘든 나라다. 이른바 표현의 자유는 말뿐이다. 방송에 나온 어느 교수는 조선시대 인물들 얘기를 하며 존댓말을 쓴 적이 있다. 함부로 말했다가 그 집안 문중의 공격을 받을 것을 염려한 탓이다.


드라마 <이산>에서 정순왕후의 측근이자 노론 벽파의 지도자격인 인물로 최석주라는 가공  인물이 등장한 것도 특정 가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설정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뿐인가? 박정희가 죽은 후로는 어찌된 일인지 노무현만 빼고, 이명박은 MB, 김대중은 DJ, 김영삼은 YS, 김종필은 JP, 정동영은 DY, 그리고 또 뭐? 정몽준은 MJ? 어르신들 이름도 마음대로 못 부르는 나라가 됐다.


굳이 어르신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나이와 상관없이 힘이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적인 관건이다. 정몽구(MK), 정몽헌(MH), 정몽준(MJ)뿐만 아니라 회장님의 아들인 이재용도 JY로 불린다니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와 당신,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랑찬 우리나라는 힘이 있는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 함부로 표현할 수 없는 나라인 것이다. ‘어딜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식의 불호령 강박이 아직도 사람들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그래서 외국영화에선 볼 수 없는 자막을 우리영화에서 나는 많이 봤던 기억이 있다. ‘본 영화에서 묘사된 것은 특정 직종의 분들과 상관이 없습니다’ 따위의 자막이거나 혹은 ‘본 영화의 내용은 특정 사실과 상관이 없습니다’ 뭐 이런.


한국 대중예술에 만만하고 고만고만한 직종의 사람들만 나와서 큰 무리 없는 이야기만 전개해나갔던 데에는 이렇게 눈치 볼 곳이 많은 살벌한 분위기도 큰 몫을 했다.


요즘 네티즌들의 리플공격이 무섭다. 그래도 개그콘서트는 네티즌 리플을 희화화하는 개그를 선보인다. 그때 네티즌들이 ‘감히 우리를 희화화하다니’하면서 달려들지 않는다. 같이 웃는다. 이런 정도면 그나마 양반이다.


기성 사회인들의 ‘발끈’ 공격은 정말 네티즌 악플 만큼이나 표현하는 사람을 위축시킨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종교인들의 발끈 공격을 들 수 있겠다.


최근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와 한국방송카메라감독연합회가 발끈했다. 4월 22일에 이 두 협회가 성명을 발표했다. 드라마 <온에어>가 촬영감독을 ‘수용가능한 희화적 수준을 넘어 비하적으로까지’ 비춰지는 일방적인 묘사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엄격한 도덕률을 기반으로 각 방송사에서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문가 집단인 촬영감독들의 자부심과 명예에 흠집을’ 내어 ‘집단의 명예를 훼손’했으므로, 이로 인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에 대한 책임을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끝까지 <온에어>제작사에 물을 것’을 천명했다.


또, ‘구체적인 형태의 사과와 시정 노력이 미흡할 경우, 드라마 <온에어>는 물론 해당 제작사에 대한 <오프 디 에어>를 위한 강경한 집단적 조치가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누구보다도 표현의 자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종의 분들이 드라마 제작사를 향해 ‘강경한 집단적 조치’ 운운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촬영감독은 성역이란 말인가? 중국집 종업원도 TV에서 괴상한 캐릭터로 나올 수 있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분도 못된 캐릭터로 나올 수 있고, 동네 가게주인도 비루한 캐릭터로 나올 수 있지만 촬영감독만은 엄격한 도덕률의 전문가로 나와야 한단 말인가?


이런 식의 잣대는 통제국가에서 <배달의기수>나 민방위 홍보물 등을 만들 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 영상물에서 군과 관은 언제나 엄격한 도덕률의 공복으로 나온다. 민주화 이후 우린 검사를 공공의 적으로 설정한 영화도 볼 수 있게 됐다. 그때 검사들이 영화사에 ‘강경한 집단적 조치’를 경고했으면 대중의 조소만 받았을 것이다. 이제 <배달의기수> 시대는 끝났다. 영상산업 종사자야말로 누구보다도 먼저 시대변화를 깨달았어야 했다.


<온에어>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 다 비정상이다. 의협심 가득한 천사표 매니저나 신경질만 바락바락 내는 푼수와 싸가지의 두 여인, 철저히 속물인 신인배우, 24시간 진지하며 누구에게나 뻣뻣하고 제작비 신경 안 쓰는 감독, 누구 하나 현실적이지 않다. 거기에 악당 매니저가 하나 더 있다. 이 인물들은 드라마가 10여 회가 넘도록 싸우기만 했다. 작품 입장에선 긴장이완이 필요했다.


하필이면 촬영감독이 그런 역할로 당첨됐다. 주요 등장인물 중 촬영감독만이 허튼 짓을 한다. 전형적인 양념 감초 역할이다. 음식점 점원이나 배달부가 그런 역할을 하는 작품도 있고, 이웃에 사는 이혼남이 그런 역할을 하는 작품도 있다. 비디오가게 점원도 허튼 캐릭터로 종종 등장한다. <온에어>에선 촬영감독이 그런 역할 비슷하게 됐다. 그뿐이다. 이건 비하는 당연히 아니고 직종희화화도 아니다. 그냥 극의 구성일 뿐이다.


작품 속에선 웃기는 사람도 있는 거고 허튼 사람도 있는 거다. 유난히 특정 직종, 특정 인종, 특정 지역 사람들만 부정적인 역할을 반복적으로 맡는다면 그건 명백한 비하가 맞다. 만약 방송사 제작시스템을 소재로 여러 드라마가 제작됐는데 반복적으로 촬영감독만 허튼사람으로 묘사된다면 그때서야 ‘비하’라는 판단이 성립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협회 측은 시청자의 인식을 염려하고 있다. 그것은 기우다. 드라마 하나 보고 해당 직종 종사자를 우습게 여길 만큼 시청자들이 순진하지 않다. <온에어>가 리얼한 현장묘사 없이 흥미위주로만 흐른다면 그건 시청자가 판단할 문제지 무슨 협회가 집단적 조치를 경고하며 지적할 사안은 아니다.


그 악명 높은 이익집단인 의사들마저도 <뉴하트>나 <하얀거탑>을 보며 ‘발끈’하지 않았다. 그 드라마들을 보면 환자 생명 자체를 소중히 여기며, 그 생명을 살려낼 수 있는 실력까지 갖춘 의사는 대한민국에 씨가 마른 것처럼 느껴진다. 뿐인가? <강적들>에선 청와대 행정관이 야시시한 치마를 입고 웃음을 흘리며 다니고 청와대 경호관이 민간인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그래도 드라마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보는 거다.


제작스탭협회가 발끈할 일은 드라마 상의 표현이 아니라 한국의 제작현실이다. 저임금 중노동이 만성화된 한국 영상제작업계의 현실에 발끈해 ‘강경한 집단적 조치‘를 실행하는 제작스탭협회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