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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종놈과 개돼지의 나라에서 방치된 제헌절

 

국경일 중에서 쉬지 않는 유일한 날이 바로 제헌절이다. 원래는 공휴일이었지만 휴일이 너무 많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2008년부터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된 무휴 국경일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제헌절을 이렇게 무휴 국경일로 놔둘 만큼 녹록하지 않다.

 

헌법정신이 무너지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대표적으로 얼마 전 종놈사건이 있었다. 서울 강남의 한 고급아파트 주민대표가 관리소장에게 종놈 아니야, 네가! 종놈이 내가 시키는데! 나는 주인이야! 너희 놈들은 월급을 받는 놈들이야, 알았어? 건방진 XX. 주인이 시키는 것만 하면 돼!’라며 폭언을 퍼부은 사건이다.

 

이 폭언의 주인공은 헌법정신을 전혀 모르고 있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한다. 민주공화국에선 주인과 종이 따로 없다. 월급을 주고 받더라도 특정한 서비스 제공에 대한 계약을 맺는 것일 뿐, 인격적으론 평등한 관계다. 하지만 이 고급아파트 주민대표는 임금 받는 사람을 종으로 여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헌법정신이 무너진 징후다.

 

 

돈 준다고 상대를 종처럼 여기는 일은 그밖에도 너무나 많다. 얼마 전 있었던 재벌 2세가 운전기사에게 한 갑질사건만 해도 그렇다. 자기가 돈을 준다는 이유로 상대의 인격을 무시한 사건이다. 이런 일은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꼽을 수도 없다. 땅콩회항 사건에서처럼 젊은 재벌이 노동자의 무릎을 꿇리는 일까지 있었다.

 

인간존엄성의 원칙이 깨지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은 모두가 존엄하고 자유로운 시민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평등하다. 존엄이나 자유 사이에 차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절대적 평등이다. 그렇게 인격적인 평등이 바탕에 깔린 상태에서 각자의 직업, 역할, 재능, 재산 등에 따라 사회적 차등이 생겨난다. 아무리 그런 차등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존엄성이라는 절대적 평등을 뛰어넘을 순 없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선 이 원칙이 수시로 깨진다. 앞에서 언급한 재벌이나 주민대표 정도까지 안 가더라도, 백화점 고객 정도만 되도 점원 앞에서 양반 행세를 하려 한다. 백화점 고객이 점원의 무릎을 꿇리고 인격 모독적인 폭언을 일삼는 사건을 우린 종종 접한다.

 

모두를 평등한 시민으로, 존엄한 인간으로 기르는 공화국의 제도가 바로 공교육이다. 각자 다양한 조건에서 태어나지만 공교육을 통해 같은 출발점에 서게 되고, 계층이동이 이루어진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이 부분에서도 무너졌다. 우리 교육체제는 거꾸로 신분 세습화를 향해 작동한다. 교육제도가 아이들을 부모 재산순으로 서열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엔 심지어 교육부 관료가 민중이 개 돼지라며 공화국의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관료사회에서 승승장구하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공화국은 신분제를 폐지했다. 그것은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절대적 평등의 원칙과 함께, 세습의 폐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귀족제의 폐지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귀족신분이 부활하고 있다. 특권층의 신분과 빈곤층의 신분이 세습되기 시작한 것이다. , 봉건시대엔 특권층에게 적용되는 형률과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형률이 달랐다. 요즘 한국에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돈다. 이것도 봉건시대로 회귀하는 징후다.

 

사람을 조건에 따라 차별하는 행태는 이제 전사회적으로 퍼져간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행태를 그대로 보고 배워 약자를 능멸한다. 이런 사회를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이 살아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헌절을 그냥 넘기면 안 된다. 제헌절만이라도 공화국의 헌법정신을 되새기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 이대로 종놈과 개돼지의 나라에서 살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