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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뇌진탕까지 감수했던 정형돈, 결국 찔렸다

 

그냥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이유 없이 찌를 것 같다.” 과거 정형돈이 한 토크쇼에서 불안장애 증상을 고백하면서 한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찌를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는 말이었다. 누가 정형돈을 찌른다는 걸까?

 

당시부터 이미 짐작이 됐었다. 바로 정형돈을 사랑하는 여러분’. 정형돈이 무한도전에 돌아오길 기원하며 그를 응원했던 팬들이다. 그 팬들이 정형돈을 찌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짐작됐었는데, 그 짐작이 증명되고 말았다. 최근 무도팬들이 정형돈에게 보내고 있는 저주를 통해서다.

 

불안장애로 활동을 잠정 중단했던 그가 최근 컴백을 선언했다. ‘무한도전은 부담스러워 못하겠고, 케이블 예능인 주간 아이돌’ MC, 형돈이와 대준이를 통한 음원공개, 그리고 한중 합작 웸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무도팬들이 정형돈에게 악플을 달며 그를 찌른다.

 

 

정현돈이 팬들을 속였단다. 이제는 배가 불러 무한도전처럼 힘든 프로그램은 하기 싫은데, 바로 빠질 수는 없으니 불안장애 핑계를 대고 빠진 다음에 쉬는 척하며 음원과 시나리오 준비를 하는 등 딴 주머니를 찼다는 논리로 그의 진심까지 의심하며 공격한다.

 

뜨겁게 응원하는 무도팬들이 언제든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정형돈 자신이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찌를 것 같은 공포를 느꼈고, 결국 사람들은 정형돈을 찌르고 있다. 정현돈이 자신들의 기대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내며 준엄하게 심판하는 팬들, 그들의 과도한 기대가 정형돈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팬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정형돈의 하차라는 결과가 나타나고 말았다. 무도팬들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면 정형돈의 불안도 그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하차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일부가 의심하듯 정형돈의 불안장애가 거짓일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예능 촬영 중에 정형돈이 불안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이다. 정형돈은 레슬링 특집 당시 뇌진탕 증세로 구토까지 하면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링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일했었는데도 사람들은 꾀병을 의심할 정도로 냉혹하다. 이런 냉혹함이 정형돈의 불안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정형돈은 무한도전초기에 수많은 비난을 당했었다. 그러다가 미존개오’(미친존재감 개포동 오렌지) 이후 천재적 감각의 예능 신흥강자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4대천왕이라고 불리는 등 너무 부풀려진 캐릭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높아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이 엄청난 불안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을 살리에르라고 자조했는데, 살리에르인 자신이 모차르트 같은 천재를 연기하면서 언제 정체가 드러날지 몰라 힘들어했다. 그를 모차르트라고 믿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그들이 자신을 찌를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느꼈을 법하다.

 

무한도전으로 돌아올 생각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무한도전제작진하고 컴백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최근 무한도전이 멤버들의 잇따른 활동정지로 어려운 상황이 됐고, 그래서 팬들이 정형돈의 컴백을 강력히 희망하는 분위기가 됐다. 그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진 것이다. 그때문에 부담이 커져서 결국 재합류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무한도전이 지금 잘 나가서 정형돈이 안 돌아와도 그만인 상황이라면 오히려 부담없이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무한도전관련해서 정형돈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큰데, 이럴수록 정형돈이 복귀할 가능성이 사라진다. 반대로 정형돈의 선택을 따뜻하게 지지해주고, 하루빨리 몸을 추스르길 기원해준다면 나중에라도 그가 부담없이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사람들이 자신을 찌를 것 같은 공포를 느끼지 않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도팬들은 지금 정형돈 찌르기에 여념이 없다.

 

정형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팬들이 이렇게 살벌한 모습을 보이면 무한도전출연자는 언제나 부담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마치 시어머니 만 명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와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출연자들이 위축되면 결국 그 피해를 보는 것은 무한도전팬들이다. 그러니 출연자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팬들 자신을 위해서도 지금보다는 좀 더 관대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