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이 백만 돌파도 어려운 지경이 됐다. 칸국제영화제에서 호평 받은 한국 오락영화가 국내 관객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전례에 비추어 보면 아쉬운 성과다. 

영화 개봉 직전에 변성현 감독이 트위터에 올렸던 글들이 화제가 되며 네티즌의 질타를 받았다. 여론이 너무 악화돼 칸국제영화제로부터 공식 초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지 못했고, 공식 사과문을 올렸지만 싸늘한 반응만 돌아왔다. 네티즌은 악의적인 감상문과 함께 평점 테러를 가해 입소문을 차단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영화 흥행이 실패하진 않았을 것이다. 관객은 냉정하게 재미를 따진다. 흥행이 안 됐다는 것은 어쨌든 재미를 주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렇다 하더라도 칸에서 받은 호평과 그에 따른 화제성을 감안한다면 백만 돌파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네티즌의 악평이 흥행참패에 영향을 준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얘기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영화의 작품성이 너무 쉽게 무시당하는 것도 문제다. 이 영화는 칸에서의 호평을 비롯해 국내외 평자들에게 잘 빠진 상업영화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대중적인 재미 코드와 달라서 흥행이 기대에 못 미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만듦새까지 도매금으로 평가절하하는 건 제작에 참여한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 평가절하가 영화 자체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아닌 감독 개인에 대한 감정적인 집단공격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중은 변성현 감독에게 일베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가 트위터에 데이트 전에는 홍어 먹어라. 향에 취할 것이다”, “문 안 초딩 싸움”, ‘이게 다 문씨 때문이다등의 글을 올리고, “궁둥이 큰 여자치고 성격 나쁜 애가 없다는 글을 리트윗했기 때문이다. 호남혐오, 문재인혐오, 여성혐오의 일베로 낙인찍어 조롱했다. 

 

이런 글만으로 일베 판단을 내리는 건 성급했다. 누구에게 낙인을 찍고 단죄하려면 몇몇 단어가 아닌, 그 사람 삶의 전체 맥락을 봐야 한다. 단어 표현 몇 개로는 누군가를 완전히 판단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국무위원 지명자의 정체성이 위장전입한 단어로 완전히 판단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홍어는 지역차별주의자가 쓰면 당연히 혐오단어이지만, 호남주민 또는 홍어를 좋아하는 당사자가 쓰면 그냥 자조적인 농담이 될 수 있다. 문재인 후보나 민주당 혹은 그에 준하는 정당을 우습게 보는 태도는 진보좌파에게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 역시 일베 판단의 사유가 되지 못한다.(민주당 지지자는 스스로를 진보좌파라고 생각하지만 진보당 운동을 하는 진보좌파는 민주당 계열을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궁둥이운운한 글을 리트윗한 건 문제가 심각하긴 한데, 이것도 여성혐오자라고 단정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을 품위 없는 태도로 표출하며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그린 것인데, 진보파한테도 가능한 일이다. 현대식 진보좌파는 욕망을 긍정하거나 심지어 지나치게 욕망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것이 겉으로 근엄한 체하며 가식을 떠는 것보다 낫고, 이성의 억압으로 구축된 기성질서로부터의 탈주라고 생각한다.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건 남성의 당연한 욕망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보느냐, 성적인 대상으로보느냐의 구분이 중요한데 이건 표현 한두 개가 아닌 그 사람의 생활태도를 보고 결정할 일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문제가 된 트위터의 글들을 통해 판단할 수 있는 변성현 감독의 정체성은 둘 중 하나였다. 첫째, 일베거나, 둘째, (호남 출신 또는 홍어 좋아하는) 진보거나.

 

그런데 단서가 더 있다. 공개된 글들 중에 변 감독이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내용이 있었다. 이걸로 변 감독이 일베보단 진보 쪽일 가능성이 커졌다. 자유분방하고 냉소적인 현대식 문화좌파라고 판단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변 감독을 일베로만 단정 지었다. 그러면서 집단적인 조롱을 가했다. 이렇게 낙인이 찍히면 피해자는 앞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무슨 일을 해도 조롱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변 감독만의 일이 아니다. 대중이 일베 낙인을 너무 쉽게 찍는다. 걸그룹 크레용팝도 몇 가지 사례만으로 일베용팝이라는 낙인이 찍혀 집단공격당했다. 에스비에스플러스의 캐리돌 뉴스는 일베 이미지를 사용했다가 낙인이 찍혔다. 실수는 당연히 잘못이지만 그 실수 하나만 가지고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일해온 제작진을 일베로 낙인찍는 건 문제다. 

일베는 자신들의 사회적 불만을 타자나 약자에 대한 집단공격으로 푼다. 툭하면 일베 낙인을 찍어 묻지마로 조롱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공격에너지를 집단적으로 푸는 것처럼 보인다는 면에서 일베와 비슷하다. 보다 차분, 관대, 현명해져야 한다. 그래야 일베와 달라진다. 

변성현 감독은 확실히 트위터에 부적절한 글들을 올렸다. 그 잘못은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걸 성숙의 계기로 삼도록 해야지, 일베 낙인을 찍어 아예 매장하는 건 부당하다. 잠시 잘못된 생각으로 문제될 말을 했다고 네티즌 샌드백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