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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상차림 규칙, 언제부터?

<하재근의 문화읽기> 제사 상차림 규칙, 언제부터?

 

 

[EBS 하재근의 문화읽기] 

하재근의 문화읽기 시간입니다. 명절 때 집집마다 차례를 지내는데요. 시대가 변하면서 제사의 상차림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던 상차림의 규칙, 과연 언제부터 생긴 걸까요? 오늘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어서 오시죠. 

[스튜디오]

유나영 아나운서

먼저 흔히들 알고 있는 제사상 규칙 중의 하나가 ‘조율이시’입니다. 왼쪽부터 대추, 밤, 배, 곶감을 놓으라는 건데, 이 조율이시, 근거가 있는 규칙일까요?

하재근 문화평론가

조율이시가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게 1919년입니다. 그렇게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전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말이 안 맞는 것 같고, 주자 가례를 비롯해서 전통적인 예법서에 뭐라고 나오냐면 조율이시 이런 게 나오는 게 아니라 ‘과, 과, 과, 과’, 과일이면 다 된다, 어떤 종류든 상관없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19세기, 조선 말기에 접어들면서 거의 대추, 밤, 배, 곶감 이런 식으로 ‘과, 과, 과, 과’가 정리가 된 것 같은데 이렇게 정리된 이유는 이러한 과일들이 당시에는 좀 흔했고 보관도 쉽고 말릴 수 있고 이러니까 좀 이렇게 취급하기에도 간편하고 단지 그런 이유로 이렇게 정리가 된 것이 아닌가, 과거에 이퇴계도 그렇고 이율곡 선생도 그렇고 이러한 제사상 차리는 데 있어서 어떤 법칙을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다르고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다르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신 적이 있기 때문에, 조율이시, 이런 것은 좀 전통의 예법이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유나영 아나운서

오히려 후대에서 엄격하게 규칙이 생긴 듯한 모습이네요. 의외입니다. 그러면 홍동백서나 두동미서 같은 여러 규칙들은 어떤 근거가 있을까요?

하재근 문화평론가

홍동백서, 두동미서, 좌포우혜 다 전통 예법서에 안 나오는 이야기고, 그리고 어동육서는 송자대전이라고 중국 책에 나오는데, 어동육서, 바다가 동쪽이고 육지가 서쪽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명이 나오는데 이게 중국 얘기거든요. 중국 사람들의 관념 속에서는 바다는 동쪽이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우리랑은 상관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모두 전통 예법서에 없는 말인데 우리가 지금 현대에 들어와서 이게 너무 대단한 유교적인 내지는 우리의 전통적인 법칙인 것처럼 지켜온 듯한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유나영 아나운서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런 제사상 상차림을 저희가 시작하게 된 건지 그 유래도 궁금합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이게 일제 강점기 때부터 내지는 일제 강점기가 끝난 다음부터 현대에 들어와서 이런 것들이 점점 강화되면서 각각의 종갓집에서 어느 집에서 이런 걸 하고 있고 또 다른 집에서는 다른 걸 하고 있었는데 그게 취합이 되면서 뭔가 합쳐진 것이 아니냐. 그리고 1960년대에 정부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조사를 했는데 전국 방방곡곡에 돌아다니면서 홍동백서를 지키십니까, 좌포우혜를 지키십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질문을 받는 쪽에서 어, 이건 지켜야 되는 예법인가 해서 역전파가 되는 바람에 1969년부터 이게 언론에 보도가 되기 시작하고 80년대부터는 아주 본격적으로 언론이 국민들한테 이걸 지켜야 된다고 거의 가르쳐주는, 이런 식으로 돼서 우리나라 국민들한테 머릿속에 박혀 버린 거죠. 

유나영 아나운서

그럼 이런 규칙들이 확산된 계기가 혹시 있을까요?

하재근 문화평론가

아무래도 현대에 들어오면 신분 질서가 해체되다 보니까 겉으로만 봐서는 누가 뼈대 있는 집안인지 알 수가 없는 거고,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이런 법칙을 지킴으로 해서 우리가 이렇게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좀 과시를 하고 싶은 심리가 있었던 것 같고, 조상한테 뭔가 예를 다해야 되는데 어떻게 예를 다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규칙을 지키면 아 나는 예를 다했구나라고 이제 안심이 되니까. 그리고 이게 굉장히 간단합니다. 홍동백서, 좌포우혜, 두동미서, 몇 개만 외우면 되니까 굉장히 쉬운데, 이 굉장히 쉬운 걸 외우고 나면 내가 마치 예법의 전문가 같은 자부심도 생기니까 그래서 아마 이런 것들이 굉장히 삽시간에 하나의 법칙으로 퍼져나간 것 같은데 전통적으로 속담에도 남의 집 제사상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마라, 이런 말이 있는 것처럼 원래 이건 각각의 집에 따라 알아서 하는 것이지, 외부에서 강제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가 현대에 들어와서 너무 제사상에 대해서 법칙을 생각해가지고 제사상에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서 재정적인 부담도 감수를 해야 되고 또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힘도 들고. 이런 것들이 좀 너무 허례허식을 차리는 것이 아니냐. 근데 추석 때는 특히 차례라는 게 간단하게 차린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이런 법칙에 얽매일 필요는 없고 원래 신숙주 후손들은 제사상에 숙주나물 안 올리고 이율곡 후손들은 소고기 안 올린다고 할 정도로 각 집안마다 달리 하는 것이니까 이런 예법에 너무 스트레스 받으실 필요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 

유나영 아나운서

맞습니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제사, 오늘은 그 은덕의 상차림과 이유까지 되짚어 봤는데요. 마음가짐과 태도까지도 우리가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