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재밌다. 영화 ‘강철비’ 이야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는 영화는 드물다. 아무리 잘 만든 대작 오락영화라 해도 중간에 한 번은 지루한 전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강철비’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엄청난 속도감이나 경이적인 영상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늘어지지 않게 드라마가 이어진다. 이것은 상당한 미덕이다.
북에서 군부 강경파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난다는 설정이다. 북의 특수요원인 엄철우(정우성)가 피격당한 1인자를 데리고 남으로 탈출한다. 북 특수요원이 초인적 액션기계로 그려지는 경향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용의자’,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 다양한 영화에서 북의 요원을 그렇게 그렸다. 정우성을 위함 맞춤옷이었다. 이미 ‘놈놈놈’ 등에서 탁월한 액션 연기를 보여줬던 정우성이 ‘강철비’에서 빛을 발한다.
남측 외교안보수석인 곽철우(곽도원)이 북 1인자의 행방을 알아낸다. 곽철우와 엄철우, 즉 남북한의 두 철우는 핵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다. ‘강철비’(Steel Rain)는 미국의 대량살상무기인 'MLRS'(다연장 로켓 시스템·Multiple Launch Rocket System)의 별칭이다. 하늘에서 폭탄을 비처럼 살포해 축구장 3배 면적을 초토화하는 위력에 이라크군이 강철비라 불렀다. 철우라는 주인공들의 이름도 강철비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선 강철비 폭격에 당한 북 1호를 특수요원 강철비(철우)가 구한다.
남의 철우와 북의 철우가 결국 힘을 합치는 것은 그들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핵전쟁이 나면 남과 북 어느 쪽에서 먼저 도발했느냐와 상관없이 모두 죽게 된다. 가족을 살려야 하는 그들은 무조건 힘을 합친다.
우리 국가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결국 우리가 죽는다. 남쪽이건 북쪽이건 구분이 없다. 물론 남한보다야 북한에서 훨씬 많은 피해가 나겠지만 남한의 인명도 살상된다. 영화에서도 남한에서 최대 수백만 명까지 희생될 수 있다고 한다. 90년대에 미국이 북폭을 계획했을 때 남한에서 백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미국은 태연히 ‘군사적 옵션’을 말한다. 내 생명도 내 생명이지만 지켜야 할 가족의 생명이 있는 우리 입장에선 평화를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 국가도 전쟁방지, 평화를 위해 전력을 다한다. 국민을 살리는 게 국가의 첫 번째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가족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전쟁을 막으려는 영화 속 철우와 우리 국가의 처지가 같다.
이 영화를 보며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북한과의 거리다. 쿠데타군의 공격에 중상을 입은 북 1인자는 당일 저녁에 일산 병원을 찾는다.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북한과 남한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던가! 영화 속에서 산부인과 의사도 휴전선 넘어 북한이 있다는 걸 이성적으로 인지는 했지만, 이렇게 가깝게 왕래할 거리라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며 북 1인자를 보고 경악한다. 관객도 비슷한 느낌이다. 북이 정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며 전쟁의 위기감이 압도해온다. 그것이 더욱 영화에 빠져들게 한다. 한반도 프리미엄이다. 한반도 밖에 사는 사람보다 안에 사는 사람이 훨씬 강한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
북의 군부가 핵전쟁을 감행하는 이유가 설득력이 약하다는 게 아쉬운 지점이다. 미국 등의 경제제재로 가만히 있어도 죽을 판이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핵을 써보기나 하자는 게 그 논리다. 이것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북한이 가만히 있으면 죽을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을 죽게 놔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만히만 있으면 북 지배자들의 기득권은 유지된다. 반면에 전쟁을 일으키는 순간 북한은 즉시 패망한다. 이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북 쿠데타 세력이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에 공감이 안 되고, 공감이 안 되니까 공포감이나 현실감이 저하된다.
그렇다 해도 어쨌든 남과 북이 살을 맞대고 있고 정예병이 서로를 겨누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근원적인 공포심은 있을 수밖에 없고,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무거운 주제지만 무겁게만 끌고 가지는 않는다는 게 큰 미덕이다. 곽도원이 여유와 웃음을 담당한다. 진지한 이야기 사이사이를 채우는 유머가 혹시 있을 지루함을 날렸다. 곽도원은 대작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존재감을 증명했다.
영화 속에서 곽철우는 말한다.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하여 더 고통 받는다’고. 남과 북, 그리고 나라 밖, 어디에나 그런 자들이 있다. 그들은 위기감과 적대감을 고취시키며 제 잇속을 챙겨왔다. 그런 자들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고 영화는 말한다. 어차피 자기들 국익이 우선인 주변 강대국들을 맹신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전쟁 나면 결국 죽는 건 우리다. 우리가 우리 목숨을 살리기 위해 평화를 이뤄야 한다. 한반도에 강철비가 내리는 일만은 절대로 없게 하자는 게 ‘강철비’의 절박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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