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문화읽기> 남북정상회담 관련 화제들

 

[EBS 하재근의 문화읽기]  

용경빈 아나운서

하재근의 문화읽기 시간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세계의 눈이 우리나라 판문점에 쏠렸는데요. 오늘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화제들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자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하재근 문화평론가

안녕하세요.

용경빈 아나운서

자, 진짜 지난주에 화제 중의 화제였습니다. 먼저 남북정상이 만난 곳, 판문점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 텐데, 판문점의 유래는 어떻게 됩니까?

하재근 문화평론가

네, 판문점이 ‘판자문이 달린 가게’라는 뜻인데, 이 지역이 원래는 판문점이 아니라 ‘널문리’였습니다. 이게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신하는데 널문, 즉 대문으로 물을 건너게 해줬다고 해서 널문리가 됐다는 설도 있고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널문이었는데. 널문리에 있는 주막 앞에 있는 콩밭에서 휴전 협상을 한 겁니다. 중공군한테 널문리 주막 앞에 있는 콩밭으로 오라고 해야 되는데 중공군이 널문리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못 하겠으니까 중공군이 편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한자로 바꾼 거죠. 그래서 널문리 주막을 한자로 바꿔서 판문점, 이런 식으로, 결국 한국 전쟁의 상처 중의 하나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용경빈 아나운서

네. 이쪽에 군사분계선이 자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군사분계선이 여기에 위치하게 된 배경과, 이곳을 넘어갔던, 왕래했던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좀 살펴볼까요?

하재근 문화평론가

판문점에 원래는 군사분계선이 없었는데, 1976년에 도끼 만행 사건 때 군사분계선이 생긴 거죠. 그래서 누구도 거기를 함부로 넘나들 수 없게 됐는데 거기를 넘은 사람이 1989년에 임수경 씨가 북한에 갔다가 남한으로 돌아올 때 그때 판문점을 넘어서, 원래 우리가 안 된다고 했는데 강행했죠. 넘어서 돌아왔고, 그 다음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994년에 판문점 넘어서 북한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고. 그 다음에 1998년에 정주영 회장이 소떼 500마리를 데리고 판문점을 넘어간 게 전 세계에 생중계가 되면서 프랑스 유명한 사람이 20세기의 마지막 전위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이런 사건을 통해서 판문점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서양 사람들은 판문점을 굉장히 국제적인 관광지로 생각하는 그런 경향도 있습니다. 

용경빈 아나운서

정말 아무나 넘을 수 없는 곳인데 말이죠. 자 이번에는 남북정상회담과 정말 대등한 인기를 누린 음식에 대해서 얘기를 해봐야 될 것 같은데요. 평양냉면, 정말 이번에 평양 옥류관의 냉면이 그래도 오지 않았습니까? 덩달아서 사람들도 평양냉면을 굉장히 많이 찾았는데, 사람들이 정말 많이 찾게 됐죠, 이번 주에?

하재근 문화평론가

그렇죠. 그날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냉면 어렵사리 가져왔다고 말을 한 이후에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그 말을 한 이후에 엄청나게 더 유명해져가지고 사람들이 줄을 죽 서서 평양냉면 먹으려고, 그리고 CNN에서도 가수 이지연 씨가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데 외가 쪽이 북한에서 넘어오신 분인가 봅니다. 그래서 이지연 씨가 추억이 있는데, 이지연 씨를 CNN에서 초청해가지고 스튜디오에서 평양냉면을 만들어서 앵커들이 마시기도 하고,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았는데 그리고 김일성이 평양냉면 먹는 법 이런 것도 화제가 되고, 면을 들어 올려서 거기다 초를 뿌리고 다시 내려서 먹고, 두 번째 그릇을 또 시켜서 고명을 옮겨서 또 먹고 마지막 그릇은 국물 위주로 마셨다, 이런 식의 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 외에도 우리나라 미식가들한테 평양냉면이 다양하게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용경빈 아나운서

평양냉면 제대로 먹는 법이라고 해서 정말 화제가 됐던 것 같은데, 저도 주말에 한 번 다녀왔습니다. 북한이 이렇게 냉면의 본고장이 된 배경 같은 게 있을까요?

하재근 문화평론가

이게 이제 메밀로 면을 만드는 게 우리나라가 밀이 잘 안 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옛날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메밀로 면을 만들었는데, 진주냉면, 옥천냉면, 남한에도 유명한 냉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평안도, 황해도 지역이 옛날부터 면 문화가 발달해서 면을 그렇게 좋아하셨다는 거죠. 그래서 메밀로 만든 면도 잘 드셨던 것 같은데 이 메밀로 만든 면은 차게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뜨거운 물에는 풀어지니까. 무조건 냉면으로 먹어야 되는데, 특히 평안도에서는 이걸 겨울 음식이라고 생각해서 한겨울에 아랫목에 앉아서 차가운 김치 국물에다가 이를 덜덜 떨면서 먹어야 진짜 냉면이다, 이런 문화가 있었는데 그게 일제 때 경성에서 히트치면서 평양냉면이 유명해지고. 또 평양소가 너무 맛있어서 그것 때문에 육수가 맛있어졌다 이런 설도 있는데. 그 평양냉면을 만들던 분들이 한국 전쟁 이후에 의정부, 장충동 이런 데 터를 잡으면서 서울에서도 평양냉면의 뿌리가 이어지게 된 것이고. 함흥냉면은 역사가 되게 짧은데 일제 때 함흥이 감자 전분의 집산지였습니다. 감자 전분으로 국수를 만들어서 먹었는데 녹말 국수라고 하면서 먹었는데 그분들이 한국 전쟁 이후에 남한으로 내려와서 평양냉면이 유명하니까 어, 우리도 이름을 붙여야겠다고 해서 녹말 국수에다가 함흥 냉면이라고 이름을 붙인 거죠. 그러니까 서로 전혀 별개의 음식인데, 마치 비슷한 음식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데 이게 면 자체가 완전히 다르고 평양국수는 메밀 쪽이고 함흥냉면은 고구마 전분이고 이렇게 두 가지 면의 양 갈래로 서울에서 인기를 끄는 겁니다. 

용경빈 아나운서

맞습니다. 이번에 외신에서는 국수 외교를 펼쳤다 이런 평이 나올 정도인데요. 어쨌든 남한 사람이든 북한 사람이든 면을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인 것 같고요. 그런 좋은 것들이 좀 좋은 결실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보죠. 말씀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