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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조영남 무죄, 사기죄 면죄부일까

 

조영남 대작 사기 혐의 재판 2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남이 그린 것을 자기 작품이라며 팔았는데 어떻게 사기가 아니냐는 반발이 비등하다. 애초에 사기죄가 맞는다는 여론이 74%였던 사건이다. 판사를 비난하는 댓글이 쌓이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조영남 대작을 사기라고 하기는 어렵다. 조영남은 현대미술을 하는 미술가인데, 현대미술에서 작품을 누구의 손으로 만들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가가 중요하다. 화투 그림 아이디어가 조영남의 머리에서 나왔고, 대작 화가가 조영남의 지시를 받아 이행한 것이라면, 그 작품은 조영남의 작품이 맞다. 

아이디어가 남의 아이디어라면 문제가 된다. 조영남은 단지 돈만 지불하고 대작 작가가 작품 아이디어부터 모든 것을 스스로 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조차 조영남이 그런 방식 자체가 내 예술 아이디어다라고 한다면 상황이 애매해진다.

 

현대미술이 상식을 벗어나 폭주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대중은 예술가가 예술혼을 불태우며 한땀한땀작품을 창조해내는 것을 미술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가의 생각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대작을 하건 뭘 하건 작가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렇다보니 미술과 사기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특히 팝아트가 대표적인 현대미술 장르인데 조영남은 과거 이렇게 썼다. 

내가 지금까지 몸 전체로 팝아트와 함께 존재했다는 사실이 나를 풍요롭게 하고 지금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양말짝이 그것 자체로 위대한 예술이라는 팝아트의 정신은 나를 철학적으로 안락하게 한다.’

 

노동자가 공장기계로 찍어낸 양말짝조차 예술이라는 생각이다. 조영남은 과거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팝아티스트라고 하면서 현대미술의 가치를 이름값이라고 하기도 했다. 나중엔 현대미술은 사기꾼놀음이라고 한 적도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조영남이 그림을 그리다가 바빠지니까 아무 생각 없이 대작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업 방식에 확실한 자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자신의 작업이 현대미술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대해 얼마든지 비난해도 좋다. 하지만 법으로 심판하는 것은 이상하다. 검찰이 달려들어 미술가의 작업방식을 재단하겠다는 것은 야만적이다. ‘다음 중 미술가의 작업 방식으로 틀린 것을 고르시오하는 시험문제 수준으로 법관이 나선 것이다. 공론장에서 미술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논의하면서 다룰 문제를 법으로 심판하려 했다. 대한민국 검찰의 만용이다. 

원래 조영남은 연예인으로 유명했지 미술가로서 크게 인정받는 위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대작 사건으로 고초를 겪으면서, ‘미술의 본령이 생각인가 손기술인가하는 화두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다. 검찰이 조영남을 한국 미술계의 중요한 작가로 올려 세워준 격이다. 검찰과 대중의 공격으로, 조영남은 당대의 상식을 넘어선 아방가르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