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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심신미약 감경, 없애야 할 제도일까

 

그동안 국민의 공분을 샀던 심신미약 감경 제도가 마침내 개선됐다.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된 것이다. 심신미약 감경의 근거는 형법 102심신장애로 인하여 책임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에 대해 형을 감경한다였는데, 이것을 ‘~ 형을 감경할 수 있다로 바꿨다. 이러면 판사가 감경 여부를 재량껏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판사의 재량이 문제가 된 것이 10년 전이었다. 당시 조두순이 징역 12년형에 처해진 이후 온 나라가 들끓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12년이 너무 관대한 처벌이라는 점과, 12년 후 그가 세상에 다시 나올 때 피해자가 느낄 공포 그리고 재범 가능성 때문이다.

 

이때 판사 재량 이슈가 등장했다. 당시 판사가 수사 단계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재판부로서는 방법이 없다며 자신에게는 재량이 없다고 한 것이다. 형법 102항의 심신미약 감경 규정이 무조건 이행해야 하는 의무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때 판사는 일반적인 판례를 뛰어넘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법 자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순 없었다. 그때의 상처로 해당 판사는 그 후 형사 사건을 맡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슈가 됐는데도 판사 재량을 인정하도록 하는 법 개정에 무려 10년이 걸렸다. 그 사이 심신미약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범국민적 공분이 들끓었는데 어떻게 10년이나 지지부진할 수 있었는지 놀랍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 대한 심신미약 반대 청원이 역대 최초로 100만 명을 넘어선 후에야 전격적으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 정도의 목소리가 모여야 국회의원들이 겨우 국민의 말을 듣는 것일까? 

판사 재량이 인정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심신미약 감경 제도 자체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온라인여론조사업체 두잇서베이의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87%가 심신미약 감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사이트 커리어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응답자의 97.8%가 반대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기는 어렵다. ‘책임성은 현대 법치체계의 기본 원칙 중의 하나다. 어린아이나 심한 정신질환자는 변별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책임능력이 없다고 본다. 이런 경우까지 형을 가하지는 않는 것이 우리 공화국 시스템의 근간이다. 그러므로 심신미약 감경 제도를 아예 없앨 수는 없다. 다만 국민들이 정의가 무너졌다고 여기지 않도록 제도를 엄격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조두순은 그의 집 옷장에서 피해자의 피가 묻은 양말 등이 발견된 것이 심신미약 판정에 영향을 미쳤다. 판단능력이 없기 때문에 증거를 집에 뒀다는 것이다. 하지만 흉악범 중에는 피해자의 물품을 마치 전리품처럼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조두순이 범행 후 지문 등 현장의 흔적을 세심하게 지운 것을 보면 충분히 판단력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사건 전에도 조두순이 음주 심신미약 감경 받은 전과가 있었다는 걸 보면 만취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전략이었을 수 있다. 이러니 심신미약 판정이 너무 쉽게 이루어진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남는 것이다.

 

2016년 여성들을 공포에 떨게 한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의 범인도 심신미약을 인정받았다. 당시 범인은 아무한테나 달려든 것이 아니라 범행장소에서 대기하며 범행대상을 골라 타격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과연 사리분별을 못할 상태였는지 의심이 남는다. 작년에 이혼 소송으로 별거 중인 부인 집에 찾아가 "재산분할 이혼소송을 그만두지 않으면 죽이겠다"며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도 역시 심신미약을 인정받았다. 

이런 내용들이 보도되다보니 심신미약이 너무 남발되는 것 아니냐고 누리꾼들이 우려하는 것이다. 사법부가 실제로는 대중의 우려보다 심신미약을 훨씬 엄격히 적용하긴 하지만, 국민의 믿음을 회복하려면 재판부의 보다 세심한 판단이 필요해보인다. , 정신능력이 미약한 사람에게 일반인과 같은 처벌을 가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격리와 치료 및 관리 체계는 제대로 정비해야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