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축구대표팀이 동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인 스즈키컵에서 우승하면서 2018 베트남 박항서 신드롬과 축구 열기에 정점을 찍었다. 우승 당일 밤 베트남 거리는 우리나라의 2002년 월드컵 당시보다 더 광란의 분위기였다고 한다. 

출발은 미약했다. 박항서 감독은 한국에서 축구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K리그에선 그를 찾는 구단이 없었고 창원시청에서 지도자 인생을 마칠 것으로 보였다. 그때 박 감독의 부인이 동남아시아쪽이라도 알아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고 마침 베트남에서 그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낙점했다. 

베트남은 9000만 명이 축구대표팀 감독이라고 할 정도로 축구열기가 뜨겁다. 그런데도 축구 경쟁력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에 열패감이 컸는데, 최근 상승한 국력에 걸맞지 않게 직전 축구대표팀 성적이 워낙 안 좋아 대표팀 재정비에 나섰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 모집에 전 세계에서 300명 가까운 지원자가 응했다고 한다.

 

축구팬들은 당연히 유럽 명장을 원했다. 하지만 베트남 축구협회는 선수들과의 호흡을 위해 아시아 명장을 뽑기로 했다. 그렇다면 일본 감독이 우선순위였는데, 문제는 베트남 대표팀의 전전임 일본인 감독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본 감독의 지도력에 의구심이 제기됐고, 결국 2002년 월드컵 4강 경력의 박항서 감독이 낙점됐다.

 

면접 때 박항서 감독은 작은 키를 어필했다고 한다. 자신이 키가 작기 때문에 키 작은 선수의 비애를 잘 알고, 그것을 극복할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베트남 대표팀은 작은 키가 고민이었기 때문에 박 감독의 작은 키 논리도 베트남 축구협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9000만 명이 대표팀 감독이라고 할 정도로 깐깐한 팬들은 박항서 신임 감독에 반발했다. 선진국 명장도 아니고, 한국에서조차 1부리그 감독 대열에서 탈락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3부리그(내셔널리그) 지도자가 대표팀 감독을 맡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는 외국인 감독의 무덤이라고 할 정도로 외풍을 많이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박항서 감독의 지위도 매우 위태로워보였다. 

2달 만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베트남의 숙적은 태국이었다. 태국을 이기고 동남아시아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염원이었는데, 무려 10년 동안 태국을 이기지 못했다. 동남아시아 대회는 2008년 최초 우승 이후 결승전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 박항서 감독이 부임 2달 만인 201712M-150컵에서 태국을 2-1로 눌렀다. 이때부터 박 감독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에 기적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출발은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호주를 누르고 결승에까지 진출했다. 한국을 4-1로 대파한 최강 전력 우스베키스탄과의 결승전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연장전 혈투 끝에 1:2로 석패한다. 베트남 전역이 달아올랐다. 동남아시아 대회 정도가 목표였는데 (23세 이하이긴 하지만) 아시아 전체 대회에서 2위에까지 오른 것이다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일본을 누르고 베트남 사상 최초로 4강에 진출한다. 또다시 엄청난 열기가 베트남을 뒤덮었다. 박항서 감독은 위인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이번, 대망의 동남아시아 대회인 스즈키컵이다. 원래부터 베트남이 목표로 했던 대회이고, 앞선 아시안게임이나 23세 이하 대회가 연령제한이 있었던 데 반해 이번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국가대표팀들의 혈전이라는 점, 그리고 앞선 대회들이 모두 베트남 밖에서 펼쳐진 데 반해 스즈키컵 결승전 마지막 경기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국립경기장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국가적 기대가 절정에 달했다.

 

박항서호는 거기에서 2018년 역사의 마침표를 찍었다. 자국민들 앞에서 동남아시아 최강의 대관식을 거행한 것이다. 베트남 기자가 태어나서 처음 본다고 할 정도의 열기가 터졌다. 1월부터 12월까지,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 한 해였다. 올해 베트남 10대 구글 검색어중에서 7개가 축구와 연관된 것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의 2018년 열광을 짐작할 수 있다. 

베트남은 프랑스와 미국을 연이어 물리치고 자력으로 독립을 쟁취했을 정도로 자부심이 큰 나라다. 하지만 그 자부심에 걸 맞는 국력을 이루지 못했다. 최근 들어 경제력이 급상승하면서 국가적 자신감이 고취되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 축구대표팀이 엄청난 성과를 거두면서 베트남의 웅비를 상징하자 베트남 젊은이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우리도 국력 상승으로 자신감이 커지던 차에 2002년 월드컵에서 국제적 성과가 나오자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우리 축구는 아시아 무대에선 경쟁력이 있었지만 세계 무대에선 열패감만 느꼈는데 2002년에 그 벽을 깼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무대에선 약간의 경쟁력이 있었지만 아시아 무대에선 열패감만 느꼈는데 올해에 그 벽을 깼다 

이렇게 보면 올해 베트남 축구 열풍과 2002년 한국 축구 열풍의 구조가 같다는 걸 알 수 있다. 2002년에 한국에선 히딩크 리더십 신드롬도 터졌는데, 올해 베트남에서도 박항서 리더십 신드롬이 터졌다. 박 감독의 수평적 리더십, 배려심, 꾸밈없고 서민적인 모습, 인생역전 스토리 등이 주목 받으면서 국민아빠로까지 격상됐다. 

한국에 대한 우호 감정도 폭발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선 베트남 청년들까지 나타났다.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터졌다. 한 명의 축구감독이 베트남 역사의 한 장을 쓰고,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관계에도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 거기에 박 감독의 인생역전 신화가 통쾌하고, 베트남 선수들의 분투가 감동을 준다. 최근 국내문제로 답답하던 국민들 속을 풀어준 유일한 이슈이기도 했다. 박항서 신드롬의 이유다.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