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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국가영웅 심석희까지 끔찍한 폭력을 당했다면

심석희 선수가 법정에서 증언한 폭행 피해 내용이 너무나 끔찍하다. 처음 폭행 사건이 알려졌을 땐 이렇게까지 심각한 줄 몰랐다. 이번에 심 선수가 말한 내용을 보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장기간에 걸쳐 폭언, 폭행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아동학대로 죄질이 안 좋은 상습폭행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아이스하키채로 맞아 손가락뼈가 부러진 적이 있고, 중학교 진학 후에는 밀폐된 곳에서 더욱 무자비하게 맞았다고 한다. 주위에 고막이 찢어지는 등 중상을 당하고 운동을 그만 둔 선수도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평창 올림픽 직전까지 맞았는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심까지 들었고 결국 올림픽 1500미터 예선에서 폭행 후유증 뇌진탕 증세로 잠시 정신을 잃어 예선탈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 폭력을 당하면서도 코치를 거역했다가 선수생활을 못하게 될까봐 외부로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재범 전 코치는 성적을 올리라는 빙상연맹 윗선의 압박 때문이라고 한 적이 있고, 이번엔 맹세코 악의나 개인적 감정은 없었으며 ... 심석희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 코치의 폭행 이유가 심석희 선수의 성적을 끌어내리려는 의도였다는 심 선수의 주장을 부정한 것이다. 폭행의 의도만 부정하고 폭행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은 것을 보면 폭행 자체는 심 선수의 주장대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스케이트 날에 손을 대는 등 심 선수의 경기를 방해했다는 주장에 대한 공방이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어쨌든 중요한 것은 참혹한 폭행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이점이 너무나 놀랍다. 심석희 선수는 한국 빙상의 간판스타로 국가 영웅이다. 그런 선수가 올림픽 직전까지 폭행에 시달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스타까지 폭행을 당할 정도라면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일까.

 

심석희 선수가 그렇게 폭행당한다는 사실을 관련 스포츠계에서 아무도 몰랐을까? 성장 과정에서 다른 선수들도 맞았다는 심 선수 말대로라면, 이런 분위기를 몰랐을 가능성은 낮다. 모두가 쉬쉬하면서 폭력이 하나의 문화, 악습으로 대물림된 것이 아닐까? 심석희 사건도 원래 알려지지 않을 일이었다. 대통령 방문 때 심석희 선수가 이탈하는 사건이 아니었다면 아직까지 아무도 몰랐을 수 있다. 지금도 누군가가 맞으면서 외부로 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스포츠계 폭력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9년에 배구코치가 폭력을 행사한 것이 사회문제가 돼 당시 대한체육회장이 "일벌백계로 스포츠계 폭력을 뿌리 뽑겠다""선수는 메달을 따는 기계가 아니며 폭력으로 따낸 메달은 차라리 못 따도 상관없다 ... 이런 희생을 겪어야 체육계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2012년에 양궁선수가 '담배 20개를 물리고 불을 붙이게 하는 등 지속적인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즈음 문화체육관광부는 관련 단체와 함께 '스포츠폭력근절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조사에서 일부 체육계 인사들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폭력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안겨줬다. 

2016년엔 고참급 선수가 후배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때도 스포츠계 폭력 사태 근절을 선언했다. 빙상계에서도 2004년 코치의 아이스하키채 등을 이용한 상습 폭행 파문으로 연맹 회장단 총사퇴, 2015년 후배 폭행 사건 등이 문제가 돼 폭력 근절 논의가 있어왔다. 그런데도 폭력이 없어지기는커녕 만인의 주목을 받는 심석희 선수까지 지속적으로 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이번 심석희 폭행 사건은 성적향상이 목표였는지 아니면 심석희 차별이 원인이었는지 조 코치의 의도, 배경 등과 관련해 진실공방이 전개될 것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운동계에서 폭력이 묵인돼온 분위기가 폭행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과거 운동선수 폭행 사건에 맞으면서 운동 안 하는 사람이 있냐?’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응이 있다고 보도돼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던 적도 있다. 우리 지도자가 해외로 진출했다가 강압적인 지도방식으로 현지에서 물의를 빚은 사건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지만 이번 폭행 사건으로 다시금 우려가 생긴다. 이 일을 계기로 운동계 폭력 문제에 대해 전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