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시작된 박항서 열풍이 한국으로 옮겨왔다. 베트남에서의 열기가 상상을 뛰어넘었던 것처럼 한국에서의 열기도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의 결승 1차전을 SBS스포츠 채널에서 중계했는데 5% 가까운 엄청난 시청률이 나왔다. ‘내 평생에 동남아시아 축구 중계를 보는 날이 올 줄이야!’라는 누리꾼들이 속출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더 믿기 어려운 일이 터졌다. 높은 시청률에 고무된 SBS가 주말드라마를 결방하고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을 지상파 채널과 스포츠 케이블 채널에서 동시 생중계했다. 그런데 SBS 시청률이 무려 18.1%(닐슨코리아)가 찍혔다. 스포츠 채널 시청률은 3.8%, 둘을 합치면 21.9%에 달한다. 동남아시아 축구 경기를 한국 방송사가 생중계한 것만 해도 놀라운데, 엄청난 시청률까지 나온 것이다. 그럴 만큼 박항서 감독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일단 박항서 감독의 스토리가 드라마틱하다. 한국 메이저 축구무대에서 거의 퇴출됐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였는데 베트남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드라마에서조차 상상하기 힘든 수직상승 인생역전 스토리다. 보통 우리는 영상콘텐츠에서 이런 성공이야기를 보며 대리만족하는데, 박 감독의 이야기는 현실이기 때문에 더 폭발력이 컸다.

 

박 감독에 열광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선 모습에 우리 누리꾼들의 자부심이 커졌다. 외교관도 못할 국위선양이라는 것이다. , 공산군 침입에 맞서 국제연대에 동참한 것이긴 했지만 어쨌든 베트남에 군대를 보냈던 것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었는데 이번에 박 감독이 혁혁한 성과를 내며 우리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준 점도 있다.

베트남의 열기가 우리의 80년대 세계 청소년 대회 4,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떠올리게 하면서 기분 좋았던 추억을 건드리는 부분도 있다. 베트남의 국가 경제 상황도 우리 과거와 겹쳐지기 때문에 박 감독과 베트남 관련 이야기를 접하면 꼭 우리 과거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마음이 아련해지면서 왠지 기분도 좋아지는 일종의 복고 아이템적 성격이 있는 것이다.

 

, 현재 우리 상황이 워낙 안 좋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다는 느낌이 강하다. 남북관계를 비롯한 대외적 문제도 그렇고, 내부적으론 경제불황 문제가 심각하다. 정치권에서도 답답한 이야기만 들려온다. 우울한 마음을 해소시켜줄 다른 이벤트도 마땅하지 않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정도가 최근 대중의 마음을 풀어준 콘텐츠였고, 그 외엔 별다른 게 없다. 이때 베트남에서 들려온 찬란한 인생역전 국위선양 승리의 스토리가 사람들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 것이다. 베트남 선수들이 몸을 던져 열정적으로 뛰는 모습도 우리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우리 내부의 불신 상황도 박항서 신드롬을 더욱 키운 요인이다. 사람들은 박항서 감독이 한국 축구 주류 무대에서 사실상 퇴출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렇게 뛰어난 실력을 가진 지도자가 한국에선 왜 인정받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불공정이란 화두와 연결된다. 사람들에겐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있고 요즘 들어 그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축구계에서도 축구협회의 불공정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강하게 나타난다. ‘인맥축구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박항서 감독이 좋은 배경과 인맥을 갖지 못한 흙수저라서 홀대받은 것 아니냐고 사람들은 의심하면서 자기자신과 동일시한다. 그런 박 감독이 해외로 나가 실력으로 인정받는 모습이 이 땅의 좌절한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박 감독의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한국 대표팀 이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여기에 중년층 이상 국민들에겐 박 감독의 이야기가 인생은 60부터!’를 상징하는 희망 스토리로 인식된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한국에서의 박항서 신드롬이 뜨겁게 나타나는 것이다. 박항서 열풍은 베트남과 한국 양국에서 2018년을 장식한 사회현상이 되었다.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