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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박태환의 냉정한 선택과 강초현의 기억



박태환 선수의 아버지가 “태환이는 예능 프로그램에 일절 출연하지 않을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운동선수가 운동이 아닌 일로 여기저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게 그 이유다.


보수적인 관념일 수도 있지만, 요즘처럼 붕 뜬 시기에 이런 원칙주의는 중심을 잡게 하는 죽비소리와 같다. 연예인 대접을 받으며 TV스타로 활동하다 운동의 호흡을 잃으면 자칫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다. 대중이 운동선수를 응원한다고 하면서 선수들한테 바람을 불어넣으면, 오히려 선수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


방송사들이 앞뒤 안 가리고 올림픽 스타 잡기에 돌진하는 이때, 박태환 선수의 방송출연 거부 결정은 매우 현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강초현 선수가 생각난다-


강초현 선수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은메달, 2000년 아틀란타 월드컵 국제사격대회에서 개인 금메달을 땄었다. 강초현 선수는 얼굴이 귀엽게 생겼다. 메달과 얼짱. 미디어가 열광하기에 딱 좋은 조건이다.


2000년 올림픽 이후 강초현 선수는 대스타가 됐다. 그때의 인기는 거의 신드롬 수준이었고, 강초현은 국민 여동생이었다. 미디어는 강초현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고, 연예계 스타가 강초현과 공개적으로 친분을 맺으며 이슈를 생산했다.


그후 강초현은 전국체전에서 결선 꼴찌를 했다. 꼴찌를 한 후에 강초현이 한 말은 “제발 저 좀 놔주세요.”였다. 당시 강초현의 지도 감독은 매체가 띄워주는 통에 훈련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강초현은 잊혀졌다. 강초현에게 쏟아진 관심은 결국 국제대회 금메달, 은메달에 대한 열광일 뿐이었다. 경기력이 떨어지자,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는 미디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등을 돌렸다. 대중은 곧 다른 스포츠 스타를 찾기 시작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강호동 만들어주거나 진짜로 응원하거나-


운동선수도 연예스타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호동이다. 강호동의 경우엔 연예인으로서의 끼가 있었다. 이경규라는 후원자도 있었다. 이런 정도의 끼를 키워주고 이런 정도의 후원을 제공할 의사가 없다면 방송사는 운동선수의 리듬을 흔들어 깨는 것에 조심해야 한다.


방송사는 한때의 시청률만 높이면 그만이다. 대중의 관심이 쏠릴 때 금메달리스트들을 하늘에 붕 띄워주면서 시청률을 즐기다가 관심이 멀어지면 흩어진다. 금메달리스트는 땅에 내동댕이쳐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연예인들이나 방송사가 말로는 선수들을 응원한다면서, 진짜로 응원할 의사가 있는 건지, 아니면 올림픽 특수를 이용해 자기들 마케팅을 하는 건지 헷갈린다.


올림픽 기간에 응원단 만들어 메달유망주들 쫓아다니며 사진 찍고, 부담 주고, 정신 산란하게 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설움 겪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을 격려했다면 방송사나 연예인들의 호들갑을 좀 더 기분 좋게 봐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가 평소에 핸드볼을 조명함으로서 핸드볼 선수들은 국민의 각별한 관심을 받게 됐다. 이런 것이 매체가 해야 할 진정한 응원의 모습이다. 반면에 방송사들은 평소엔 가만히 뒀다가 메달을 따면 달려들어 사람의 얼을 빼놓는다.


그 사람이 계속 잘 나가면 방송과 연예인들은 계속해서 그 사람과의 우의를 돈독히 할 것이지만, 경기력이 떨어지는 순간 세상이 냉혹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구조에서 살아남을 길은 결국 선수 스스로가 정신 차리는 것밖에 없다.


방송사와 연예계는 진정으로 선수들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저 선수의 인기를 잠시 분점하려 할 뿐이다. 그런데 그 선수의 인기의 원천은 경기력에 있는 것이지 방송활동에 있지 않다. 강호동이 될 수 없다면, 선수가 있을 곳은 결국 훈련장이어야 한다.


그래서 박태환 측의 냉정한 선택은 바람직하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수영에서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박태환이지, TV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연예인들과 어울리는 박태환이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이런 결정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냉정을 잃지 않는 현명함이 요청된다는 소리다.


방송사도 선수를 강호동으로 만들어줄 생각이 없다면, 시청률 장사에 선수들을 곶감 빼먹듯 동원하지 말고, 평소에 진정으로 응원할 일이다. 우리나라의 무수한 비인기종목은 왜 올림픽 시즌에만 조명 받아야 하나? 장사 될 때 그들을 불러내는 것보다, 평소 묵묵히 훈련할 때 야구, 축구에 쏟는 관심을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나눠주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이런 게 진짜 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