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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타짜 계동춘 월화의 왕자가 되다


 

생각지도 않은 사람이 월화 드라마 격전장의 왕자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타짜>의 계동춘이다. 장혁도 아니고, 송승헌도 아니고, 김갑수도 아니고, 이미숙도 아닌, 계동춘이 월화 최고의 캐릭터다. 수목에 강마에가 있다면 월화엔 계동춘이 있다.


계동춘은 극중 이름이다. 본명을 몰라서 계동춘이라고 썼다. 지금 검색해보니 본명은 장원영이다. 생소한 사람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송강호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같다. 송강호가 처음에 <초록 물고기>에 등장했을 때 진짜 깡팬 줄 알았었다. 그만큼 리얼했고, 강렬했다. 계동춘도 리얼하고 강렬하다.


배우 같지가 않고 진짜 양아치 ‘구라꾼’ 같다. 물론 단지 얼굴이 낯설고 연기를 잘해 악역을 잘 소화한다는 이유만으로 계동춘이 월화의 왕자가 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계동춘이 ‘나쁜놈’인데 웃기며, 정감어리다는 것이다.


정이 간다. 말투는 웃긴다. 하는 짓은 못됐다. 외모는 비루하다. 그러므로 비주류 강마에다.


극 중에서 김민준이 멋진 외모와 ‘옷빨’로 순식간에 의젓한 CEO가 되는 것을 보며, 계동춘은 외모 관리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마에스트로 정장을 맵시 있게 차려입고 다니는 매력남 ‘계마에‘는 될 수 없다.


그는 ‘구라꾼’ 계의 마에스트로 아귀와 그 수제자 김민준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비주류일 뿐이다. 그래서 강마에처럼 멋있을 수는 없는데, 대신에 마이너만의 독특한 매력을 뿜어낸다.


처음 <타짜>를 봤을 때 계동춘은 단지 좀 웃기는 감초 정도로 생각했다. 그때도 물론 그 독특한 목소리와 야비한 연기는 눈에 뜨였다. 하지만 비중이 너무 작았다. <타짜>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성격이 강하다. 그 틈을 비집고 감초 조연이 자기 존재감을 내뿜기란 힘든 일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계동춘이 나오는 장면만 되면 화면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계동춘이 회를 거듭하며 아귀, 고니, 정마담, 평경장, 작두 등을 모두 누르고 <타짜>에서 가장 강렬한 캐릭터로 발화하고 있었다.


처음에 계동춘은 단순히 아귀의 충직한 심복 1번일 뿐이었다. 김민준이 아귀의 신임을 받으며 질투심을 느끼는 계동춘이 거기에 추가된다. 그러다 김민준이 좀 잘해주면 금방 좋아하는, 단순한 계동춘이 추가된다. 고니를 밟는 모습에선 비열한 계동춘이 있다. 정마담에게 작업 걸었다 실패하는 장면에선 불쌍한 계동춘이 추가됐다. 한예슬이 손 한번 얹어주자 얼굴에 화색이 도는 모습에선 순진한 계동춘이 추가됐다. 17회에선 경마고수를 때려잡는 폭력 계동춘이 추가됐다. 그러다 고니, 김민준에게 차례로 얻어맞는 모습에선 안습 계동춘이 추가됐다.


이렇게 단순한 아귀 충복 1번에서 다채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진화하고 있다. 계동춘만 나오면 몰입도가 대폭 상승한다.


찌질하고 악독하고 비열한 성격에 한없이 순진해 보이는 목소리의 화학적 결합은 최고의 폭발력을 가져왔다. 영화 <타짜>에선 평경장과 고광열의 존재감이 강력했었는데, 드라마 <타짜>에선 계동춘이 그 둘을 압도하고 있다.


17회에서 계동춘은 모처럼 극 전개의 주역으로 나서 한예슬에 스르르 무너지고, 한 판 크게 땡기려 하다, 처참하게 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계동춘이 주역으로 나서자 <타짜>가 훨씬 재밌어졌다.


<베토벤 바이러스>처럼 주역이 파란을 일으키는 캐릭터가 되면 시청률을 견인하겠지만, 계동춘은 워낙 비중이 작아 시청률에 크게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극을 살리는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다.


계동춘은 불쌍하다. 아귀에 치이고, 고니에 치이고, 여자들에게 돌아가면서 치인다. 하지만 시청자가 보고 있다. 굳세어라, 계동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