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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대한민국영화대상 유현목, 심형래 감동이었다




오발탄의 유현목 감독이 공로상을 받았다. 진작 받았어야 하셨을 분이다. 봉준호 감독은 유현목 감독을 일러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에 버금가는 한국의 거장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비록 오래된 영화지만 오발탄을 봤을 때 나도 전율했었다.

그때가 90년대 초반이었는데 그 즈음 내가 있던 독립영화 모임에서 유현목 감독을 초청해 영화를 함께 보는 자리를 마련했었다. 벌써 십 한 사오년쯤 전 이야기다. 그때 뒤풀이 자리에서 호프를 기탄없이 드시며 까마득히 어린 우리와 정열적으로 영화 얘기를 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NG 를 ‘에누지’라고 하셨던 게 아직 기억이 나는데 오늘 영화대상에서도 에누지라는 표현을 쓰셔서 옛날 생각이 더 났다.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셔서 놀랐다. 연세도 참 많이 들어 보이고. 세월은 역시 어쩔 수 없나보다. 이미 살아생전에 역사가 된 분이니 연세가 많이 되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옛날엔 백발이어도 그렇게 정정하셨었는데 휠체어에 기댄 모습을 뵈니 마음이 허전해진다.


유현목 감독은 예쁘고 잘 생긴 배우 말고 포토제닉한 배우를 좋아한다고 했었다. 그에게 포토제닉이란 영혼이 보이는 표정의 소유자란 의미다. 오발탄의 김진규는 생각하는 표정이어서 좋아한다고 했었다. 바로 유현목 감독 자신이 그런 영화를 만들었었다. 영혼이 보이는 생각하는 영화들.


공로상 수상소감이 일반적인 영화계 회고담이 아니라 담배, 동국대, 불교재단, 특혜입원, 금연캠페인으로 이어진 건 정말 재밌었다. 박수치고 웃으면서 그 장면을 봤다. 대가가 이런 정도 해프닝 벌일 수도 있는 거지. 누가 태클 걸 건가, 80십 노구의 유현목 감독인데. 담배는 피지 말아야 할 요물이라는 게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정조가 일찍 죽은 것에도 담배가 한몫을 했는지 모른다.(화병에 시달렸던 정조는 담배에 의지했다고 함)


임권택, 정일성 감독 등이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유현목 감독의 수상소감을 듣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그런데 디자이너 앙드레 김까지 수상소감 내내 서있는 건 웬지 보는 내가 죄송스러웠다. 앙드레 김도 원로이신데. 영화계 인사도 아니고. 누가 좀 앉혀드리지.


영구아트무비가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당연히 받을 상을 받은 거다. 너무나 당연한 상을 받으면서 심형래 감독이 눈물까지 글썽일 줄은 몰랐다. 정말 고생도 많이 했고 맺힌 것도 많은가보다.


국내 일개영화제에서 시각효과상 하나 받은 정도는 심형래 감독과 영구아트무비가 한 일에 비해 대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걸로도 눈물을 보일 만큼 지난 세월이 그에게 서러웠었던 것 같다.


그는 영화제 후 인터뷰에서 "'디워'의 미국 개봉과 관련해 (현지에서) 혹평을 받은 것으로만 알려져 있는 현실이 슬프다"라고 했다. 디워가 작품으로 평가를 못 받은 게 그에겐 여전히 한인 것 같다.


디워는 작품성으로 절대 평가 받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예전에 디워 관련 글에서도 쓴 바 있지만 심형래 감독이 이 부분만큼은 스스로 인정해야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전에도 말했지만 심형래 감독이 작가로서 인정을 못 받는 건 본인이 영화를 못 만들어서지 남들이 심 감독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제작자로서, 또 영구아트무비의 건설자로서의 그의 공적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한국사회도 본인 스스로도 이 두 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어쨌든 그간 심 감독의 노고에 치하를 보낸다. 디워가 미국에서 혹평 받은 건 당연한 일이다. 미국사람한테 심 감독의 삶이나 영구아트무비의 분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건 한국인에게만 의미 있는 일이다. 난 미국사람이 아니니까, 난 한국사람이니까, 작품완성도를 떠나서 영구아트무비의 수상을 축하한다. 디워는 거국적인 성원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심 감독이 더 이상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사났네 경사났어 ^0^-


만년 조연배우 이한위가 시상자로 나섰다. 이 정도로 조명을 받다니 그야말로 인생역전이다. 옛날에 이한위는 그저 그런 드라마 조연배우로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다. 나한테 배우 이한위가 입력된 건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였다. 그때 ‘어 이 사람 배우다’라는 강력한 신호가 왔다. 그래도 스타는 되지 못했는데. 최고의 연기력을 가졌으면서도 주연급 외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배우들에게 영화제라도 애정을 보여주면 보는 사람도 흐뭇하고 좋은 일이다.


타짜의 유해진이 조연배우상 후보로도 이름을 못 올린 건 아쉽다. 타짜에서 그는 경탄할 만한 연기를 보여줬었다. 박철민이 뜨는 건 반갑다. 옛날에 그는 운동권 문화행사 전문 사회자로 이름을 떨쳤었다. 이름하여 ‘민주대머리’. 민주대머리가 영화제에 나올 줄은 옛날엔 미처 몰랐었다.


출산드라 김현숙에게 미녀는괴로워 노래를 맡긴 건 정말 괜찮은 생각이었다. 어설픈 스타쇼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항상 잘 나가던 사람들 시상식 때 또 뽐내는 모습 봐서 뭐하나. 이렇게 마이너에 대한 애정이 감동적인 쇼를 만든다. 청룡영화제 때 개그콘서트 뮤지컬팀의 공연이 감동적이었던 것도 마이너에 대한 애정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인간, 마이너에 대한 애정과 묻혔던 것의 재발견이 담긴 쇼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또 감동까지 준다. 김현숙, 이한위, 심형래, 그리고 이제는 역사가 된 유현목까지. 이번 대한민국 영화대상의 좋았던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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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출산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