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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2007년 대중문화계 결산(2)


 

2007년 대중문화계 결산(2)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군 학력위조 파문에선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두드러졌다. 1990년대 한국문화 르네상스 이후로 우리 문화인들에게 강연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예술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입시공부와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사회는 그런 사람들한테 강연을 요청하면서 암묵적으로 학력·학벌을 요구했고 결국 위조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또, 대학과 그 대학 동문이 자신들의 학벌가치를 높이기 위해 유명 문화인의 위조를 사실상 방조했다.


하지만 이것이 문화·예술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사건이 불거진 후 한 유명 사교육기관에선 강사 중 상당수의 학력정보가 사라진 일도 있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일인데 단지 문화·예술인이 터뜨리기 좋은 대상이라는 이유로 사냥당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결국 사람에게 간판을 요구하는 학력·학벌 간판 사회가 낳은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예술품을 경매라는 수단을 통해 판매하는 것이 올해 우리나라에서 본격화 되었다. 미술시장의 과열이 연일 보도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갑자기 예술애호가가 된 것일까? 아니다. 재테크 종목이 하나 더 늘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미술시장이 커지면 마치 미술계가 부흥하고 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이건 음반시장이 몰락했음에도 디지털 음원시장의 유지로 음악시장이 건재하고 있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나는 원리와 같다. 경매시장의 휘황찬란한 뉴스에 현혹되지 말고 국가는 예술진흥에 나서야 한다.


신정아 사태는 한국 순수미술계의 부실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교수, 감독, 큐레이터, 미술관들이 움직였다. 그 안에 예술은 없었다. 예술은 없는데 경매시장은 과열됐다. 급기야는 한국 최고 유명화가의 위조작품이 경매시장에 흘러나오기도 했다. 사람과 작품에 모두 위조의 그림자가 얼룩진 한 해였다. 게다가 비자금과 미술계의 부적절한 추문까지 터져 나왔다.


드라마쪽엔 두 가지 특기할 만한 흐름이 있었다. 바로 미국 드라마 열풍과 사극 열풍이다. 과거 드라마시장은 우리의 철옹성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드의 공세가 무섭다.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적절한 우리 드라마 육성·보호책이 강구돼야 한다. 그렇다고 미국 드라마를 금지해서도 안 된다. 우리 드라마산업을 보호하되 선진 문화가 들어오는 창구는 계속해서 유지돼야 한다.


최근에 유독 고구려 사극이 많았다. IMF 이후의 열패감을 국가적 자부심에서 찾으려는 우경화의 징후인 측면이 일부분 있다. 만주열풍과 함께 자유시장열풍까지 불고 있다. 주주와 소비자의 권리는 신성시되고 있으며 국민은 오직 경제적 이익만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우경화 국면이다.


‘이산’이나 ‘왕과 나’ 등은 언제나 있어왔던 사극들이므로 특별한 사건이라고 하기 어렵다. 태왕사신기는 우리 드라마역사상 초유의 규모로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었다고 할 만하다. 사극 열풍에 끼어 남북합작 사극 사육신이 KBS를 통해 방영됐지만 국민의 반응은 싸늘했다. 서로간의 문화적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하루빨리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문화적 분리를 막아야 한다.


공중파 중간광고 허용 논란도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광고를 안 하고 공공성을 완전히 담보한 상태에서 방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광고를 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사는 자신의 공공성을 언제나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중간 광고 사태 때 방송사들이 보여준 태도는 광고 수익에만 혈안이 된 수익자의 자세 그 자체여서 비웃음을 샀다.


신사임당이 신권의 모델로 선정됐다. 신사임당은 그동안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21세기에 화폐 여성모델 선정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에 진취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현모양처라는 구습에 주저앉은 것이다. 한국사회의 보수성이 다시  한번 드러난 사건이다. 신사임당의 실체를 재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모델을 선정한 측이 역사재해석을 위해 신사임당을 낙점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디카 열풍도 빼놓을 수 없다. 똑딱이 디카와 함께 DSLR 열풍이 함께 불어 전 국민의 사진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일부 DSLR 애호가들의 여성도촬 행각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대중의 손에 표현할 문화매체가 쥐어졌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DSLR 열풍은 레이싱걸 열풍과 맞물리기도 했다.


대중에게 생긴 매체는 또 있다. 바로 UCC 열풍과 블로그 활성화다. UCC는 이제 인터넷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블로그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블로거기자라는 말까지 탄생시키며 1인 매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준으로까지 성장했다. 각 정당은 블로거들을 상대로 취재요청을 하거나 기자출입증을 발급하는 등 시대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정보통신과 첨단 전자기술을 기반으로 한 부문에선 문화적 성장이 있었다. 양극화의 진전에 따라 고소득자들을 위한 뮤지컬 시장도 성장했다. 그러나 중산층이 붕괴되는 곳에서 문화가 풍성하게 꽃피는 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중산층 붕괴는 시장화 때문이다. 과거엔 독재권력이 문화성을 압살했다면 이젠 시장권력이 문화성을 고사시키고 있다. 시장의 상품원리가 갈수록 팽배해 문화적 전망은 어두워 보인다. 객관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희망은 의지로 갖는 것이다. 의지로 낙관하며 2008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