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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방송사시상식 차라리 구내식당에서 하라

 

방송사 시상식 차라리 구내식당에서 하라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말이 있다.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뜻으로, 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그 뜻이 풀이되어 있다.


신상필벌의 엄정함은 해당 조직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상을 못 받거나, 혹은 아무에게나 장난처럼 상이 돌아가는 조직을 상상해보라. 이런 조직은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되고 만다.


그것이 꼭 ‘상’이라는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가 각 개인에게 보답을 안겨주는 기준이 무너질 때 그 사회는 자멸하게 된다. 예컨대 우리 사회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일류고, 일류대를 나와 미국유학을 다녀온 사람에게만 일방적으로 과도한 이익을 안겨주는데, 이런 식의 신상필벌은 국가적 신뢰를 붕괴시키고 있다.


이런 이유로 노론 세도가에게만 이익을 안겨줬던 조선이 자멸했던 것이며, 귀족 권문세가에게만 이익을 안겨줬던 고려가 멸망했던 것이며, 성골-진골 귀족에게만 권세를 안겨줬던 신라가 붕괴했던 것이다. 공평한 기준이 없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으랴’라는 동양 민란의 구호도 결국엔 ‘기준’에 관한 얘기였다.


엄정한 신상필벌은 사회적 신뢰를 배양하고,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서 각 개인은 성실히 삶을 영위하게 돼, 결국엔 국가경쟁력이 올라간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사회적 신뢰를 갖춘 경쟁력 있는 나라를 선진국이라 하는 것이다.


문화부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문화부문에서 얼마나 자원배분의 신뢰성이 희박한가를 지난 학력위조 사태가 보여줬다. 어떤 젊은 여자가 미국 명문대 간판과 권력층 연줄을 통해 아주 쉽게 한국 최고의 예술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신상필벌 원칙이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그 속에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학벌 간판 쟁탈전을 벌인다.


간판-연줄이 기준인 대한민국 문화판은 그래서 ‘패거리’ 문화만을 생산할 뿐 진정한 문화적 창조력은 보여주지 못한다는 혹평을 받아왔다. 학술계도 마찬가지다. 엄정한 기준이 없다. 그저 일류대 출신만이 교수가 되고, 또 일류대 출신 교수만이 인정받고, 일류대에 근무하는 교수만이 대접받는 우리 학술계는 학문적 창조성이 ‘0’에 가까운 해외 학문 수입상에 불과하다는 냉소를 받는다.


대중예술부문에서도 미국과 같은 대중예술 선진국과 우리나라는 신상필벌의 대표적 의례인 시상식 문화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엔 미국처럼 전 국민이 주목하고, 모든 해당 분야 종사자들이 신뢰하는 시상식이 없다. 시상식이 치러질 때마다 그 공정성, 기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각 방송사가 시행하는 연말 연예상, 연기상은 그 기준의 자의성이 올해 극에 달했다.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여는 행사인 만큼 방송사 마음대로 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논리는 납득되지 않는다. 그럴 거면 방송사 구내식당에서 자기들끼리 하지 왜 공중파를 통해 전 국민이 봐야 한단 말인가? 공중파방송은 불특정다수에게 살포되는 것으로서 국민은 사실상 강제로 이것을 봐야 한다.


게다가 시상식이 ‘시상행위’ 그 자체로 감동을 주지 못하자 점점 더 예능프로그램화하고 있는데 올 ‘시상식 흥행’의 승자라는 MBC의 연예대상이 그것을 극명히 보여줬다. 반말이 난무하는 ‘막장 버라이어티’의 행태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MBC 연예대상은 대상 수상자 선정으로 모두에게, 정말로 모두에게 놀라움을 안겨줬다. 이순재와 무한도전 전 멤버에게 한꺼번에 대상을 안긴 것이다. 상을 받은 당사자들부터 매우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순재는 당대 최고의 배우이긴 하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의 한 캐릭터에 불과하다. 무한도전처럼 거침없이 하이킥도 캐릭터들의 조화가 강한 프로그램이었다. 모든 캐릭터에게 다 대상을 주는 기준이라면 거침없이 하이킥의 주요 멤버도 동시에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대상은 한 명에게 주는 것이지 ‘수고한 모든 분들께’ 주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식적인 기준에 의거해 공동수상자를 고른다면 강호동, 유재석이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공동수상의 남발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SBS 연기상은 박신양과 김희애가 공동수상해 대상의 위상을 스스로 실추시켰다. 신상필벌엔 엄정한 기준도 중요하지만 상의 가치도 중요하다. 가치 있는 보상이어야 위신이 서지 않겠는가.


KBS는 연예대상을 탁재훈에게 안겼다. 그런데 탁재훈의 대표적 프로그램인 상상플러스의 전성기는 2007년이 아니었다. SBS 연예대상은 강호동의 차지였다. 강호동의 주요 SBS 프로그램들도 2007년 전의 일들이다. 결국 두 방송사는 지금까지의 공헌도를 종합-소급 적용해 대상을 결정했다는 얘기가 된다. 공헌도 종합으로 결정되는 상은 상식적으로 공로상이다. 그냥 방송사 내부적으로 종합 평가해 대상을 주는 일은 구내식당에서 자체적으로 해도 무방하다.


MBC 연예대상은 공로상을 신구, 송윤아, 김상호 등 3명에게 공동 시상하는 ‘해괴한’ 일을 선보였다. 이 셋 중에 정상적인 연예대상 공로상감은 개그맨 김상호밖에 없다. 송윤아가 MBC 타 시상식에서 사회를 몇 번 봤다고 공로상을 주는 것은 코미디예능분야에서 분골쇄신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며 신상필벌 원칙의 붕괴를 의미한다. 상이 장난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에 방송 3사가 공히 연기대상에서 전대미문의 대량시상행위를 감행했다. 어차피 ‘장난’이 돼버린 상 이리 준들 어떠리, 저리 준들 또 어떠리. 그야말로 트로피를 사방팔방에 ‘난사’ 했다. 분야를 쪼개고 또 쪼개고, 쪼개도 안 되면 아예 ‘듣보잡’의 타이틀을 만들어서 모조리 공동수상으로 트로피를 융단 살포한 것이다.


물론 연말에 방송사가 ‘잔치’를 열 수는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이 왜 공중파를 타야 하느냐는 것이 문제다. 구내식당에서 자체적으로 먹고 즐기면서 트로피 나눔 파티를 열든 말든 누가 뭐라나.


시상문화의 발전은 해당분야의 발전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중문화의 발전을 선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공중파 방송국이 지금처럼 사세과시, 연줄챙기기 등에 방송사 시상식을 남용한다면 대중예술의 발전도 요원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