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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나는가수다, 네티즌수사대의 활약은 빨간불

역시 네티즌은 놀랍다. <나는 가수다>에서 중복된 샷을 찾아내고 말았다. 형사 콜롬보가 울고 갈 수사력이다. 규칙이 갑자기 바뀐 것이나, 매니저가 바뀐 것에도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더 나아가 옥주현이 다닌다는 교회까지 문제가 되고 있으며 그것이 PD나 매니저의 교회와 연결되고, 어떤 회사가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사실관계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놀라운 탐사(혹은 상상) 능력이다.

특히 중복된 샷이 대박이었다. 이것과 바뀐 규칙 등으로 인해 옥주현에 대한 비난은 재빨리 제작진에 대한 성토로 바뀔 수 있었다. 공격의 수위를 더 강화할 근거가 제공된 셈이다. 네티즌뿐만 아니라 언론들까지 나서서 제작진을 성토하고 있다.

이렇게 또다시 집단지성이 승리하는 걸까? 네티즌수사대가 감춰진 진실을 백일하에 드러내면서 이 세상에 정의가 바로 서는 걸까?


- 위험신호가 느껴진다 -

그보다 지금의 흐름은 일종의 위험신호로 느껴진다. 네티즌수사대가 놀라운 수준으로 파헤치고 대중이 열광하는 국면에선 빨간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황우석 사건 때도 그랬다. 나는 황우석을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과 별도로 황우석을 절대 우상화하면서 그에 대한 반대증거를 모두 조작이라고 단정했던 흐름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당시에 황우석에 비판적인 방송은 샅샅이 분석되어 조작의혹이 제기됐었다.

이번에 <나는 가수다>의 샷을 샅샅이 분석한 것과 비슷했다. 황우석에 대해 반대증언을 하는 사람의 영상을 하나하나 분석해 갖은 의혹이 나왔던 것이다. 누군가의 각본에 의해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주장이 크게 힘을 얻었다.

치밀한 분석은 타진요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타진요는 신분증 한 장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샅샅이 분석해 온갖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배후의 검은세력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조작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엔 리액션 샷들이 하나하나 분석의 대상이 되고, 다른 의혹까지 발굴되면서 '이 모든 것은 신 PD의 기획이다!'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임재범 토사구팽설, 교회커넥션설 등등) 전형적인 음모론의 진행 양태다.

이런 식으로 일이 전개되면 반드시 멈춰서 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빨간불의 의미다. 무조건 '멈춤!'이다. 대중이 집단적으로 열광하면서 뭔가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시시콜콜히 캐고 갖은 의혹이 양산될 때는 '과몰입'을 의심해야 한다.

물론 대중이 정말로 진실을 밝혀내면서 정의를 세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고, 사실은 아닐 때가 훨씬 더 많은 것이 요즘의 상황이다. 특히 권력형 비리도 아니고 연예계 이슈 캐기는 거의 대부분 과몰입에 의한 루머의 양산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결국 모두에게 상처만 남는다.


- 과몰입은 위험하다 -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과몰입의 온상 역할을 하고 있다. 서바이벌 경쟁 구조가 워낙 짜릿하고, 게다가 인간적인 감동까지 있으며, 각자의 분명한 캐릭터까지 있어서 이 거대한 드라마에 대중이 과몰입하기 십상이다. 와중에 정당성을 주장할 확실한 명분까지 있어서 더욱 대중이 정의의 봉기를 감행할 수 있다.

그 결과 과도한 숭배 또는 과도한 증오가 나타난다. 과도한 숭배는 오디션에서의 묻지마 몰표와 <나는 가수다>에서의 열창과 감동 신성시가 그렇다. 과도한 증오의 계보는 <슈퍼스타K>에서 김그림, <위대한 탄생>에서 이은미,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김제동-이소라-김영희PD-옥주현-신정수PD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옥주현-신정수PD 대에 와서 절정에 달했다. 이 증오 시리즈에서 연간 댓글수 신기록이 계속 갱신되고 있는 중이다. 이건 분명히 과열이다. 이렇게 집단적으로 과열될 때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 네티즌 수사대의 현미경식 수사와 거기에서 양산되는 온갖 의혹들이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도된 기획이라는 음모론이 대미를 장식하면서 '저 나쁜 놈을 향해 정의의 칼을 들자!'가 가능해진다.

이런 건 정말 비음악적, 비예술적, 비문화적인 구도다. 예술은 유희인데 전쟁터가 돼버렸다. 물론 룰을 갑자기 바꾼 것이나, 샷이 중복된 것 등은 제작진의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기술적인 수준의 잘못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걸 공격해 얻는 것보다 지금의 살벌함에서 우리가 잃는 게 더 많다.

지금의 전투 모드는 일단 해제하는 게 좋겠다. 사실 이렇게 싸울 에너지로 음악전문프로그램 시청률을 올려주면 유사프로그램이 우후죽순처럼 생길 것이고, 뛰어난 가수들을 원없이 볼 수 있다. <나는 가수다> 하나가 뭐 그리 대순가?

꼭 전투에 목이 마르다면 방송사를 상대로 좋은 시간대에 전문음악프로그램을 편성해달라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이 될 것이다. 혹시 전문음악프로그램은 맥빠지고 <나가수>만 최고인가? 그게 빨간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