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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았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화려한 분야에서 잘 나가면, 모든 분야에서 다 잘 나가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생길 수 있다. 요즘 한류, 삼성, 김연아가 잘 나가니 그런 착각이 생기나보다. 한국이 일본을 역전했다는 착각이 생겨나고 있다.

마침 한국에선 한류니, 동계올림픽이니 하는 희소식이 터져나오고, 일본에선 대지진이니 재정적자니 하는 안 좋은 뉴스만 전해져서 더욱 그렇다. 최근엔 김연아를 통해서 뒤바뀐 한일 위상을 살펴본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기사엔 이런 대목이 있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일본이 산 너머 지는 해라면, 한국은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한 동방의 찬란한 태양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자신의 성과에 도취하면 안 된다. 한국은 그렇게 도취해도 될 만한 나라가 못되고, 일본은 그렇게 우습게 봐도 되는 나라가 아니다. 삼성, 김연아, 소녀시대가 잘 나가는 걸 한국이 잘 나가는 것과 동일시하면 곤란하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기술력이 압도적이다. 첨단분야 정상급 기술이 한국은 41개, 일본은 361개라고 한다. 대일무역적자가 최근 대지진으로 인해 줄어들었데도 불구하고 올해도 역시 300억 달러 가까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은 일본의 기술이 없으면 물건을 만들지 못한다.

장차 삼성, 현대가 잘 나가면 이것이 뒤집힐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일본과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는 부품 소재 산업에서 발생되기 때문이다. 이 부문은 중소, 중견 기업들이 담당한다.

일본은 세계적인 수준의 중소, 중견 기업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이것이 아무리 삼성이 소니를 따라잡아도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를 따라잡는다고 평가하기 힘든 이유다. 한국은 중소, 중견 기업들이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지방대는 이미 고사 상태다.

일본은 지방대는 물론 지방 중견기업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나라다. 일본은 공동체 의식도 한국보다 뛰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국가의 소득재분배 정책에 따른 불평등 감소 효과 비율이 한국은 0.011 정도인데, 일본은 0.048 정도다. (스웨덴은 0.121)

일본은 오랫동안 중산층 사회로 유명했었는데, 요즘 그것이 깨졌다며 하류사회로 간다는 비명이 터져나온다. 하류사회를 다룬 일본의 한 책에선 하류사회의 미래를 보고 싶다면 한국을 보라며, 한국은 이미 무너진 사회라고 진단한 바 있다. 일본이 아무리 하류사회가 되도 한국의 치명적 양극화엔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허리 이하가 무너지는 체제에서 삼성, 김연아, 소녀시대가 아무리 잘 나간들 한국이 일본을 앞서긴 힘들다. 일본은 부동산 버블과 과도한 토건 경기부양으로 인한 재정적자로도 유명한데, 불행히도 한국은 이쪽 부문에서만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다.

상대적으로 화려한 부문이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것에 도취하면서, 그것을 우리 자신이 전체적으로 잘 나가는 것으로 착각하면 내부적으로 문제를 고쳐나갈 에너지가 생기기 힘들다. 언론까지 나서서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았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띄우면 곤란하다.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먼 나라다. 일본에게선 아직 배울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