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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혐한류, 왜 일본을 탓하나

타카오카 소스케의 반한류 발언 이후 일본에서 관련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타카오카 소스케의 발언이 소개됐을 때부터 열띤 반응이 있었다. '섬나라 원숭이들아, 한국 가수가 가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라' 정도부터 시작해서 훨씬 강도 높은 증오댓글들까지 있었다.

만고에 보기 드문 일이다. 한국은 지금 문화를 내보내는 입장이다. 물건을 파는 입장인 것이다. 파는 쪽에서 사는 쪽을 비웃거나 싸우려고 들다니, 말이 되나?

네티즌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한류`혐한류 사건이 불거진 후 우리 언론에 공개된 칼럼들도 대체로 일본을 탓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폐쇄적인 탓에 경쟁력을 잃었고, 현재 아무리 일부에서 한류를 공격한다 해도 한류의 경쟁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일본은 한류 공격할 시간에 자기 앞가림이나 잘 해라' 대체로 이런 정도의 내용들이었다. 이런 글들은 우리 네티즌의 환영을 받았다.

일본의 필자들이 한국 사람들한테 '니들이나 잘 해라'라고 글을 쓴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당연히 열 받을 것이다. 일본사람이라고 우리보다 특별히 나을 것이 없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 언론의 글들을 보면 열 받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을 열 받게 해서 우리가 얻을 게 무얼까? 뻔하다. 혐한류의 확대.

이렇게 한국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기분 좋게 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점이 없고, 상대국을 자극하기만 하는 '일본탓'을 우리가 할 이유가 없다. 일본이 폐쇄성을 고치던 말던, 앞으로 경쟁력을 기르던 말던, 그 나라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한국 사람이 훈수 두면 얄밉기만 하다.

- 혐한류는 너무나 당연하다 -

우리도 미국 문화가 한국에 밀려들어오면 각계각층에서 일제히 개탄하는 소리가 나온다. 과거엔 제국주의 쓰레기 문화라며 매도하는 목소리도 컸다. 심지어 헐리우드 영화가 직배되는 극장에 뱀을 풀어 넣기도 했다. 이런 게 인지상정이다. 외국 문화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데 경계심이 안 일어나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럴 때 미국사람들이 '한국의 천한 것들이 감히 미국 문화 고마운 줄 모른다'며 우리를 조롱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격렬한 규탄 여론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외국 사람들한테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분노가 초래된다.

일본 배우가 자기 트위터에, 일본 TV에 한국드라마가 넘쳐나는 상황에 불평을 하던 말던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신경을 꺼야 한다. 우리 과민반응의 피해자는 결국 우리 자신이 될 것이다. 상대국의 혐한론자들은 아쉬울 것 하나 없다. 한국에서 반응해줄 수록 쌍방의 대립이 커지니까.

한국에서 선동 장사를 일삼는 언론이, 대만이 한국드라마 통제법을 추진한다는 식으로 보도해 인터넷이 시끌시끌했던 일도 있었다. 그때도 증오 댓글이 넘쳐났다. '미개한 섬나라 ***가 한류를 탄압한다'는 식의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한국드라마 통제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사실은 대만의 입법위원(국회의원)들이 외국 프로그램의 무분별한 방영을 조절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유선라디오TV법에 자국 프로그램 의무 방영 비율이 20%인데 40%로 상향조정할 생각이라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최소한 40%는 보겠다는데, 일본이나 중국사람들이 '이 반도 원숭이들아'라며 조롱하고 공격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가 이렇게 사사건건 예민하게 반응하고, 공격적으로 나서면 혐한류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럼 결국 문화를 내보내려는 쪽만 손해를 보게 된다. 한 마디로, 물건을 못 팔게 될 것이다.

- 우리나 잘 하자 -

동아시아 한류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이 지역에 국가주의적 대립 의식이 고조되는 것이다. 그런데 네티즌의 민감하고, 공격적이고, 오만한 자세는 반드시 상대국 네티즌을 자극해 국가주의적 대립의식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최악으로 가는 셈이다.

따라서 아주 심각한 것이 아닌, 너무나 당연한 수준으로 상대국에서 나타나는 반발엔 신경 끄는 것이 맞고, 그런 것에 일일이 열을 낼 에너지를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 써야 한다.

우리가 한류를 위해 정말 민감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내부에 만연한 인종차별, 국가차별적 의식이다. 하지만 우리 네티즌은 정작 이런 문제엔 지나치게 대범하다. 이런 우리의 의식이야말로 장차 혐한류의 주범이 될 것이다.

우리 컨텐츠가 일본 것보다 좋다며 일본을 놀려댈 때가 아니다. 우리 컨텐츠의 질을 더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미국의 문화상품은 세계 곳곳에서 비판받았다. 그때 미국사람들의 대응은, 그런 비판에 일일이 반응하면서 타국 사람들을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은 자국의 문화상품을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데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러자 미국문화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아도 미국 문화산업의 경쟁력이 저절로 유지됐다.

심지어 한국에선 가수 출신 방송인인 배철수가 TV 프로그램에 나와 '나의 고민은 우리 청소년들이 가요만 들으면서 팝음악을 너무 안 듣는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자발적인 지지자들이 생겨났다. 우리 영화 <디워>와 <트랜스포머>가 맞붙었을 때도 많은 한국인이 <디워>를 조롱하며 <트랜스포머>를 찬양했다. 요즘엔 아이폰에 대한 찬사가 줄을 잇는다. <아바타>도 절대숭배의 대상이었다.

결국 컨텐츠의 질이 관건인 것이다. 우리가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가면 혐한류가 있건 없건 한류는 계속 잘 될 것이다. 이게 핵심이다. 반대로 우리가 반한류 사건에 일일이 대응하면서 일본과 중국을 조롱하고 공격한다면, 한류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자살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