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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심형래파문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


한국사회에서 심형래는 단순한 영화감독이 아니었다. 그는 신지식인 1호이기도 하고, 또 한국이 잘 하지 못했던 특수효과 영상을 헐리우드 수준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을 보여준 장본인으로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도전정신, 모험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또 <디워> 개봉 당시 이념대립이나 국론분열을 방불케 하는 극단적 대치 상황을 초래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 그의 위기는 우리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 <디워> 사태가 말해주는 것 -

<디워> 당시 상당수 네티즌은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떠나서 심형래 감독이 헐리우드 수준의 특수효과 영상을 만든 것 자체에 열광했다. 이것은 우리 한국이 그때까지 깨지 못했던 어떤 벽을 넘어선 것이라고 인식됐기 때문에, 월드컵 4강에 대한 열광과 비슷한 종류의 뜨거운 호응이 발생했다.

반면에 주로 진보적인 쪽에서는 <디워> 열풍에서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를 봤다. 수출지상주의라든가, 경제지상주의,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애국주의, 국가적 지원과 관심이 한 쪽으로만 쏠리는 폐해를 봤던 것이다. 진보적인 쪽에선 이런 문제들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디워>를 강력히 공격했고, 결국 그것이 네티즌의 열광과 크게 충돌했다.

<디워> 사태는 한국사회의 현 주소를 말해준다. 우리 사회가 생산적인 토론이 아닌 극단적인 증오와 열광만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 말이다.

먼저, '디빠'들은 심 감독의 도전정신을 옹호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작품 자체까지 찬양했다. '디까'들은 그것이 애국주의라고 했는데, 디빠들은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는 그것이 국산품이라서가 아니라 좋은 작품이라서 좋아한다'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오버였다.

당시 진중권 등이 <디워>가 못 만든 작품이라고 하자, 그에 반발해 이것이 얼마나 잘 만든 작품인지를 주장하는 글들이 많이 나왔었다. 억지 옹호에 차마 눈 뜨고 못 볼 정도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디워>를 옹호하면서도, 작품 자체에 대해선 옹호하지 않고 진중권의 비판에 동의해서 상당한 비난을 받았었다.

심형래가 보여준 모험정신과 그것이 갖는 국내 산업적 의의를 옹호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맞았다. <디워>는 국산품이라는 것 말고는 옹호해줄 이유가 단 하나도 없는 영화였다. 디빠들은 그것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바로 이어진 <라스트 갓 파더> 기획안 발표 때 나는 '첫째, 그런 영화는 만들지 말고 와장창 부숴대는 특수효과 액션영화를 만들 것이며, 둘째, 심형래는 제작만 하고 감독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디빠들에게 만들지도 않은 영화 비판부터 한다고 비난을 들었다.

이렇게 일체의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무조건적, 절대적 찬양이 심형래의 감독으로서의 만용을 부추겼으리라고 짐작된다. 심 감독의 입장에선 감독을 하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으니 당연히 스트레스도 커졌을 것이다.

한편 디까들은 애국주의, 싸구려 휴머니즘 등의 수사를 동원하며 디빠와 심형래를 증오하기에 바빴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한국 영상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에 환호하는 것이 무에 그리 화나는 일이란 말인가?

디까들은 막무가내였고 지금도 그렇다. 국내 산업의 발전이나 외국에서 달러를 벌어오는 것에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저 박정희의 그림자에 대한 증오만 있을 뿐이다.

<디워> 사태는 절대적 열광과 절대적 증오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 가장 걱정되는 것 -

심형래는 모험적 투자, 새로운 산업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도전하는 자세를 상징했다. 걱정되는 건 그가 몰락함으로 인해서, 우리 사회에 그런 모험에 대한 냉소가 더 커지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2000년대 이후에 모험하지 않는 체제로 재편됐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신규투자를 하지 않고 현금을 쌓아놓으며 배당이나 하고 있다. 그리고 단기적 수익성이 보장되는 '안전빵' 장사나 하려 한다. 단기주의와 수익성 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것이다. 그 결과 경제적 역동성과 일자리가 줄어들고, 수출경기가 좋건 말건 국내 서민경기가 언제나 파탄지경이다.

국내 산업, 국산품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지도 사라졌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양담배나 외제차는 백안시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도 내 친구에게 '왜 양담배를 피우며 미제 아이폰을 좋아하냐!'고 했다가 비웃음만 들었다. 이러면 국내 산업이 크기도 어렵고, 어렵게 번 달러가 자꾸 외국으로 나가게 된다. 그 달러 한 장 한 장이 우리 노동자의 피땀이다.

국론분열의 양상까지 갔던 <디워> 사태다. 그래서 상징적인 의미가 대단히 크다. 심형래의 몰락으로 모험적인 투자나 국내산업을 밀어줘봐야 사기나 당하고 실패할 뿐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 누군가가 돈키호테같은 도전정신을 보여줘도 제2의 심형래라며 냉소당할 수도 있다.

그것이 걱정된다. 한 영화제작자의 부침과 상관없이 국내 산업의 모험적 투자는 계속 되어야 한다. 원래 벤처 투자는 90%가 망한다. 망하는 게 정상인 것이다. 어떤 분야를 강력히 밀어주다 보면 그 안에서 사기꾼, 허풍선이, 먹튀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특별한 일이 전혀 아니다. 망하는 게 무섭고, 손해보는 게 두려워서 당장 돈 되는 것만 하면 그 나라 경제는 반드시 주저앉는다.

그러므로 실패사례를 너무 크게 생각할 필요 없다. 실패사례에서 학습은 냉정히 해야 하겠지만, 실패 그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여겨야 한다. 심형래가 혹시 몰락한다고 해도 냉소와 두려움이 우리 사회를 뒤덮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