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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낯뜨거운 방송사시상식, 낯뜨거운 가요대제전

 

이번에 치러진 연말 방송사 시상식들에 대해 이상한 반응이 일부 매체에서 나왔다. 어차피 각 방송사의 자체행사이기 때문에, 제3자가 왈가왈부하기 힘들다는 논리였다. 여태까지 이런 적은 없었다.

해마다 시상식 시즌이 끝나면 그 문제점들을 성토하는 네티즌 여론이 뜨거웠다. 언론사들도 우리 방송 시상식 문화를 개탄하는 기사들을 내놨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여론이 비교적 작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부 매체의 옹호론까지 나타났던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체념론, 혹은 현실인정론쯤 되겠다. 현실적으로 시상식들이 각 방송사의 자체 행사라는 것을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 말이다.

지난 연말과 올 초에 나타난 현실인정론은 대체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내부행사론. '시상식은 각 방송사의 내부행사에 불과하다. 자기 회사 내부행사를 자기를 이해관계대로 하겠다는 데 뭐라고 하기 힘들다.'

둘째, 잔치론. '시상식에는 일종의 방송사 잔치 같은 성격도 있기 때문에 참석자들이 상을 나눠 가지는 것을 훈훈하게 봐줄 필요도 있다.'

셋째, 스타권력론. '이젠 스타의 권력이 강해져서 방송사도 스타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상을 진상할 수밖에 없다. 그런 방송사의 처지도 이해된다.'

이런 현실적 이유들을 들어 방송사 시상식을 과거처럼 크게 비판하지 말자는 주장이 이번에 일부에서나마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서 흔히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제3의 시상식 신설이다. 방송사의 시상식은 어차피 구제불능이니까 어쩔 수 없고, 대신에 권위 있는 상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

물론 정말 권위도 있고 공정성도 있는 시상식이 생긴다면야 좋은 일이다. 각 방송사별로 시상식을 찢어서 할 것이 아니라 모든 방송계를 아우르는 진정한 한국 대중문화 대상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영화계에서도 수십 년째 권위있는 시상식 하나 제대로 운영 못하고 있는 나라에서, 제대로 된 방송계 시상식을 갑자기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일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런 시상식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은 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중장기 과제라는 데 있다. 그때까지 기다리면서 지금 당장 파행으로 치닫는 방송사 시상식들을 방치할 순 없다.

- 시상식은 방송사의 것이 아니다 -

2000년대 들어 민영화의 광풍이 불고 있다. 민영화라 함은 공공의 자산이 특정인이나 회사의 배타적 사유물로 귀속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식으로 사유화가 과도하게 진행되면 공공의 이익이 줄어든다. 대신에 각각의 사적 주체들 사이에 이익 챙기기 경쟁이 격화되어 우리 사회는 정글로 변해갈 것이다.

방송사 시상식 체념론은 말하자면 광의의 민영화라고 할 수 있다. 방송사 연말시상식을 각 개별 방송사들의 배타적 사유물로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그러면 방송사들은 시상식을 통해 이익추구에 골몰할 것이고, 그 결과는 한국 대중문화계의 추락이다. 각 방송사들이 시상식으로 약간의 이익을 챙기는 대신에, 피해는 한국 대중문화계와 그것을 향유해야 할 국민 전체가 당하는 것이다. 이것을 체념하고 인정해야 하나?

방송사 시상식의 문제는 심각하다. 기본적으로 납득할 만한 기준이 없다. 조금이라도 시청률에 공헌한 작품의 출연자들이라면 온갖 명목을 갖다 붙여서 뒤죽박죽으로 상을 준다. 이름만 들어도 실소가 터져 나오는 괴상한 이름의 상들이 범람한다. 이러면 상의 의미가 사라진다.

대상의 공정성 문제로 여러 차례 홍역을 치른 MBC의 경우는 이번에 아예 사람이 아닌 작품에게 대상을 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연기력이 안 되는 배우들에게 주연을 맡기고, 그 작품이 인기를 끌 경우 보상 차원에서 대상을 주고 싶은데, 그러면 비난을 받으니까 아예 대상을 작품으로 바꾼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자유롭게 실력이 아닌 스타성 위주의 캐스팅을 하고, 그들에게 부담이 없는 각종 상들을 나눠 주겠다는 선언으로 느껴진다.

KBS 연예대상에서 김병만은 찬밥신세였다. 김병만이 SBS에서 주요 프로그램을 시작했기 때문에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MBC는 한국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홀대하고, <일밤>을 살린 <나는 가수다>에게 대상을 안겼다. 이 정도면 '엿장수 마음대로'라고 봐야 한다.

신상필벌이 뒤죽박죽으로 될 경우 어느 부문이든지 발전할 수 없다. 시상자가 자의적으로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상을 줘도 그 부문은 엉망이 된다. 대중문화계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이런 논란이 있었지만 점점 그 논란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은 사람들이 지쳐가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은 지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들 마음대로 시상식을 하는데, 비판해야 하는 사람들은 힘이 빠져간다. 해마다 하는 비판 또 하는 것도 지겹고, 나중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에 빠진다. 또 방송사 시상식의 정체성도 모호해져서 이번엔 심지어 옹호론까지 나타난 것이다.

일단 원칙을 엄격히 세워야 한다. 방송사는 자기들 돈 벌기 위해서 사업활동을 하는 곳만이 아니다. 방송은 우리의 공공영역이다. 방송이 담당하는 대중문화는 우리 전체의 자산이다. 그러므로 방송사의 시상식도 방송사의 사유물이 아니다. 한국 대중문화계 결산을 MBC, KBS, SBS가 각각 대리해서 하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방송사의 자의적 시상식을 비판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내부행사, 잔치, 스타챙기기 등은 국민에게 방송되는 공식 시상식이 아닌 별도의 방송사 회식으로 처리해야 한다. 방송사가 매년 잘못한다면, 당연히 매년 크게 비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방송사가 조금이라도 공공적 책무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낯 뜨거운 가요대제전 -

방송사들이 대중음악계 연말 결산의 성격으로 치르는 가요대제전들도 항상 낯 뜨거운 광경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아이돌의 범람과, 인디나 밴드 음악에 대한 무관심이다. 또 한국 대중음악계 결산인데, 한국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팝송을 부르거나 외국 가수들의 안무를 따라 하는 것도 낯 뜨겁다. 과거엔 출연가수들 전체가 나와 '뉴욕 뉴욕'을 부르는 나라망신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한 팀이 '뉴욕'을 애타게 찾는 추태를 보였다.

'올해의 노래'를 뽑는다면서 전화투표를 하는 것도 코미디다. 이러면 일부 팬클럽만의 잔치가 될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두드러진 추태는 '한류자랑'이었다. 한류가 세계를 휩쓴다는 식의 낯 뜨거운 자화자찬이 경쟁적으로 나타났다. 이런 식이면 '국격'이 점점 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