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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김연아를 욕하는 사람들

 

얼마 전 있었던 황상민 교수의 방송사고 사태 때 수많은 사람들이 김연아 선수를 욕했었다. 황상민 교수가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했는데도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바로 지난 주에도 한 멀쩡한 중앙일간지에 한 멀쩡한 지식인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글을 실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번 황상민 방송사고 사태는 너무나 단순한 사건이어서 특별히 본질이랄 게 없는데도 사람들은 황상민 교수의 말도 안 되고 지극히 선동적이기만 한 이야기에 동조하면서 본질론을 펼쳤다.

 

김연아 측에게 뭔가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이 터지자 일제히 욕을 한 것이다. 무슨 미운 털일까?

 

그건 그런데, 일단 황상민 교수의 복잡한 이야기들이나 본질론이 왜 무의미한 주장인지부터 확인하자면 이렇다. 황상민 교수가 대학교육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그게 자신이 했던 방송의 본질이라고 하는데, 그건 이번 사태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일 뿐이다. 황상민 교수가 주장하는 그런 대의에 문제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논란의 주제가 전혀 아니었다.

 

문제가 된 건 황상민 교수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에, 마치 김연아 선수가 단 하루 얼굴만 내밀고 교생실습을 했다고 쇼를 한 것처럼 말한 대목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부분만이다. 이걸 두고 본질이니 뭐니 떠들어대면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딱 그 부분에 대해서만 오류를 수정하면 끝나는 일인데, 황상민 교수는 자기 말의 본질을 보라면서 계속 엉뚱한 이야기만 했다.

 

이렇게 단순한 사건에 정말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엉뚱한 주장에 동조했던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미운털 때문이다. 이 글에선 그걸 분석하려고 한다.

 

그전에, 일단 전통적으로 한국 교육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비판적 지식인들이 황상민 교수의 본질 떡밥에 넘어갔다. 이 사람들은 김연아 선수에 대한 미운털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이 글에선 논외다.

 

첫 번째 미운털은 국민영웅 미운털이다. 김연아가 국민영웅으로 떠받들어지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불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진보적 혹은 좌파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국민~~~’ 이런 거에 알러지 반응이 있다. 올림픽이나 각종 국가대항전에서 무슨 태극전사가 어쩌고하면서 국가영웅 신드롬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번에 황상민 교수의 궤변을 옹호했다.

 

두 번째 미운털은 연빠 미운털이다. 김연아의 극성팬들이 이번 사태 초기부터 고소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극렬한 공격성을 보인 것이 사람들의 반감을 초래했다. 이렇게 공격적인 팬덤을 보유한 사람은 반드시 견제를 받게 되어있다. 유빠 때문에 유재석까지 싫어진다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연아 선수측이 진짜로 고소를 한 것도 그런 견제심리에 불을 질렀다. 방송에서 해프닝 수준의 잘못된 발언이 나왔고 곧 사실관계가 밝혀졌는데도, 굳이 사과를 받아내야겠다며 소송을 건 것은 그악스러운 이미지를 형성했다. 그 소송과 연빠들의 극렬한 집단공격 때문에 여러 언론이 황상민 교수에게 발언기회를 줬고, 덕분에 황 교수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국민에게 계속 전달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미운털은 돈연아 미운털이다. 김연아가 선수로서 성실히 활동하기보다는 명성 관리나 하면서 돈벌이에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번에 일이 터지자 김연하 선수를 비난했던 것이다.

 

첫 번째 국민영웅 미운털에 대해서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극히 불편감을 가지는 우리나라 좌파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감수성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이글의 목표가 아니다.(이건 대단히 뿌리 깊은 문제여서 앞으로도 이것과 관련해 줄줄이 논란이 터질 것이고 논의할 기회도 많을 것이다)

 

두 번째 연빠 미운털의 경우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팬덤의 문제, 관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팬덤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렇게 공격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결코 자기 스타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또 김연아 선수를 관리하는 측도 그렇게 공격적인 자세가 결코 김연아 선수의 이미지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 번째 돈연아 미운털. 이게 이 글을 쓰는 핵심적인 이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다. 수많은 사람들이 김연아 선수가 운동을 게을리 하며 CF나 찍고 다닌다고 욕하는데, 그 사람들은 김연아 선수만큼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을까?

 

김연아 선수는 최소한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집중하며 노력했다. 엄청난 수준의 고통도 감내했다. 언제나 몸이 아팠지만 참고 또 참았다. 긴장과도 대결하고, 국민적 기대라는 부담과도 대결했다. 그리하여 자기 분야에 관한 한 세계 최고가 되었다.

 

어떤 사람 인생에서 올림픽 메달을 한 번이라도 땄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뭘 어떻게 더 해야 하나?

 

그런 사람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 욕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기 인생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김연아 선수처럼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라면 남의 일에 악플을 달래야 달수가 없다. 그럴 시간이 없을 테니까.

 

김연아 선수처럼 네티즌이 비웃는 사람이 또 박태환 선수인데, 박태환 선수는 MT가 뭔지도 몰랐을 정도로 연습에만 매진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잠깐 시간을 내서 CF를 찍으면 연습을 게을리한다고 네티즌은 욕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바로 이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굴 탓하는 게 아니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도 그리 성실하게만 사는 인생은 아닌 것 같아서다. 우리 모두가 남의 불성실을 탓하기 전에 자기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면 좋겠다. 정말 고통을 참아가며 치열하게 살아본 사람이라면, 올림픽 메달을 딸 정도로 뜨겁게 살아온 사람의 삶을 비웃진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