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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유아인 배슬기 트위터 논란과 20대의 분노

 

안철수 후보가 사퇴한 후에 배우 유아인이 트위터에 올린 글 때문에 논란이 일었었다.

 

‘만족스럽냐. 권력을 내려놓지 않은 것은 야권 또한 마찬가지다. 신물 나게 싸워봐라. 목적을 상실한 권력. 근본을 상실한 권력. 권력 그 자체를 위한 권력을 휘두르며. 제자리에서 ’기성‘이라는 것들...’

 

이런 내용이었다. 여기에 대해 상당한 비난도 있었지만, 일부 젊은 네티즌은 공감한다고들 했다. 이 글이 20대의 정치적 정서를 상당부분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선 ‘기성정치세력은 모두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무작정 싸우기만 하는 짜증나는 패거리들’이라는 인식을 읽을 수 있다. 평소 유아인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고 그래서 젊은 네티즌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가수 겸 배우 배슬기는 안철수 후보 사퇴를 알리는 글에 ‘제대로 투표할 힘 빠진다. 난 이래서 종북자 무리들이 싫다’고 썼다가 맹비난을 당했다. 논란이 커지자 배슬기는 곧 글을 삭제하고 ‘지인과 대화중의 개드립’이었다며 ‘종북드립을 사과한다’고 했다.(드립:발언이나 행위를 낮추어 이르는 네티즌 용어, 개드립:애드립이나 가벼운 장난을 일컫는 네티즌 용어)

 

- 20대의 정치혐오 -

 

여기서 이 사건을 예로 든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발언들을 통해 현재 20대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20대들은 사회과학을 학습하지 않았고, 조직적인 정치활동도 하지 않았다. 멋지고 ‘쿨’한 소비생활을 즐기고, 자기계발 도서나 나긋나긋한 에세이류 정도나 읽다가, 가끔 TV뉴스에 뜨는 국회폭력 영상이나 인터넷에 뜨는 정치인 비리 뉴스를 보며 정치혐오감을 키워온 세대다.

 

‘저 아저씨들은 왜 저렇게 구리지? 왜 쿨하지 못하지?’

 

이들은 또 ‘88만원 세대’라는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권은 자기들 이익만 챙기기 때문에, 기득권 시스템과 ‘짝짜꿍’이 되어 20대가 피폐해지는 걸 방조 내지는 주도했다고 생각한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도둑놈들이야! 우리를 대변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래서 정치신인 안철수에게 기이할 정도의 탄탄한 지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어차피 기성정치권은 ‘못 믿을 놈들’이기 때문에 기대할 건 신인밖에 없었다. 20대는 ‘기성’을 혐오하고, ‘기성’에게 분노했다. 자기들 잇속만 챙기는 정치 자체를 불신했다. 차라리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말까지 나온 건 그런 이유에서다.

 

- 정치혐오하다 혐오할 정치판 만든다 -

 

분노하는 건 좋다. 부조리에 분노하는 건 문제를 바로잡을 출발점이 된다. 20대가 분노하자마자 각 당이 즉각 청년배려에 나서는 것만 봐도 분노의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요즘 20대가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20대의 요구가 절대선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정치인이나 지식인들도 모두 청년을 어루만져주는 멘토가 되려 한다. 이렇게만 가선 안 된다. 누군가는 20대의 자기반성도 촉구해야 한다.

 

배슬기의 발언을 예로 들었지만, 요즘 인터넷을 보면 ‘종북’이란 말이 넘쳐난다. 신종 '빨갱이 낙인‘이다. 그런 낙인을 찍는 네티즌 중에 해당 정치인에 대해 심사숙고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만약 사회과학을 공부했다면 이런 ’드립‘을 그리 쉽게 하진 못했을 것이다. 또, 정치권을 모두 ‘기성’이라며 싸잡아 ‘쓰레기’ 취급해도 되는 것일까? 현대정치사를 공부하면 모든 정치인들을 그리 쉽게 도매금으로 묶진 못할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안 한다는 데 있다. 유아인, 배슬기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일반적인 20대의 상태가 그렇다는 얘기다. 인터넷 기사나 TV, 팟캐스트 정도로 정치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과거엔 대학생들이 자신의 고통이 아닌 다른 약자의 고통을 고민하다가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요즘 20대는 자기들 고통만을 알아달라고 소리치며 화를 낼 뿐이다. 사실 무지의 상태에서 분노만 하는 대중이 바로 나쁜 정치인에게 이용당하고, 결국엔 정치후진화의 원인이 되기 딱 좋다.

 

스스로 한국정치를 가로막는 덫이 되지 않으려면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지금보다 똑똑해져야 한다. 싸잡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세부적인 차이를 정확히 구별하는 ‘스마트유도체’를 가져야 한다. 정치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정치에 참여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남에게 이용만 당하는 ‘봉’ 노릇에서 벗어날 수 있다. 20대의 보다 세련된 분노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