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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섹드립, B급 아니면 안 통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올해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런저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작품들도 크게 인기를 얻긴 했다. ‘추적자’가 한국드라마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고, ‘광해’가 이 시대가 원하는 리더십과 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정치적인 혹은 사회적인 분노나 문제의식을 표현한 작품들이 크게 화제가 됐다.

 

현 자본주의 체제의 그림자를 표현한 ‘피에타’의 경우 베니스 작품상을 받은 후에 절대적인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과거에 김기덕 감독을 비판했던 평론가들은 새삼 조롱의 대상이 됐고, 김기덕 감독의 심기를 거스르는 자들은 모두 네티즌의 공적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흥행은? 베니스 작품상이라는 어마어마한 후광효과에 네티즌의 절대적 지지세로 미루어 수백만은 따 놓은 당상인 줄 알았다. 결과는 김 감독이 성매매라는 19금 소재를 다룬 ‘나쁜 남자’보다도 흥행이 안 됐다. 재미없고 자극을 안 주면 ‘아웃’인 세상이다. 물론 김 감독이 중간에 영화를 스크린에서 내린 탓도 있지만, 그 엄청난 화제성에 걸맞을 정도로 뜨거운 흥행은 분명히 아니었다.

 

이상한 건 네티즌이 김 감독과 ‘피에타’를 절대적으로 지지했다는 점이다. ‘피에타’에 대해 조금이라도 딴지를 걸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런 댓글 분위기로만 따지자면 최소한 수백 만 명 이상은 이 작품을 봤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100만 명도 넘기지 못했다. 보지도 않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지지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지지했던 것일까?

 

아무튼. 재미가 중요하다. 재미를 주려면 자극을 줘야 한다. 어떤 자극이든 좋은데 제일 좋은 건 웃기고 신나는 거다. ‘광해’만 하더라도 진중한 기본 구조 위에 코믹코드를 잔뜩 얹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진지한 드라마였다면 천만 관객을 동원하진 못했을 것이다.

 

 

◆‘섹드립’이 통했다

 

재미와 자극성을 내세운 가벼운 오락물을 ‘B급’이라고 한다. 뭔가 A급스럽지 않은,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작품들이다. 올핸 싸이가 B급의 제왕으로 우뚝 섰고, ‘도둑들’이 B급 천만 관객 시대를 열었다. ‘도둑들’의 천만 돌파는 정말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사회적인 메시지도 없고, 민족의 한을 다루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국민흥행이 나타난단 말인가? 이건 이 시대가 그만큼 심심풀이 땅콩 정도의 오락을 원한다는 뜻이었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는 웃겼고 말춤은 신났다. 안 그랬다면 절대로 그렇게 뜰 수 없었다. .

 

예능은 전반적으로 저조한 가운데에 신동엽이 ‘섹드립’을 무기로 재기했다. 유재석, 강호동의 견고한 2강 체제를 흔든 건 결국 19금 코드였던 것이다. 19금 코드는 지상파, 케이블TV를 가리지 않고 올 최고의 핫 키워드 중 하나로 떠올랐다. 19금이야말로 가장 손쉽게 자극을 줄 수 있는 방편이다. 김기덕 감독의 최고 흥행작도 결국 19금 코드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속 시원히 웃겨주는 ‘개그콘서트’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드라마 쪽에선 ‘골든타임’이나 ‘추적자’ 같은 명작이 등장해 찬사를 받았지만, 크게 인기를 얻은 건 역시 ‘시월드’를 내세운 주말드라마나 멜로 복수 통속극인 ‘해를 품은 달’ 같은 작품이었다. ‘해를 품은 달’에는 액받이 무녀라는 야릇한 설정도 등장했다. 복잡한 인연, 신데렐라, 복수 등등의 자극적인 코드는 올해도 맹위를 떨쳤다.

 

드라마에서 촉발된 시월드 신드롬은 각종 토크쇼로 이어졌고 결국 사생활폭로로 발전됐다. 이외에도 사생활토크는 전반적으로 저조해진 예능 토크쇼를 살릴 구원병으로 자리매김했다. 착한 토크쇼였던 ‘놀러와’는 인기가 점점 떨어지자 ‘섹드립’ 19금 토크로 돌파구를 모색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시청자는 좀 더 화끈하게 상대에게 면박을 주고 사적인 비밀을 폭로하는 방송을 원했다.

 

 

 

◆모든 것의 B급화, 이미지만 남는다

 

출판시장이 잔뜩 얼어붙은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들이 이젠 차분히 책을 읽지 못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조차 조금의 지겨움을 못 참는 이들이 어떻게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잠시라도 틈이 생기면 눈길을 돌려버리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자극성이 강화되면서 모든 것이 ‘B급’화하고 있다. 강박적으로 웃기고 강박적으로 벗는다.

 

불안한 사람들이 때때로 사회적 작품을 통해 분노를 표출하긴 하지만 깊고 질긴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고, 평소엔 가벼운 재미거리나 소비하는 분위기다. 그러니까 사회성 있는 작품들이 간간이 찬사를 받아도 대세엔 큰 변화가 없다.

 

정치인은 원래 연예인 스타처럼 이미지로 소비되는 존재다. 원래도 그렇지만 이번 대선은 그런 이미지성이 유독 강했다. 이렇다 할 정책도 없이 선한 이미지만으로 갑자기 시대를 뒤흔든 안철수 현상은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 모두 본인들의 정치경력보다 과거에서 비롯된 이미지로 부각됐다. ‘피에타’를 보지도 않고 무조건 지지하는 사회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범람했던 정치토크쇼는 인물경쟁현황에만 몰입하는 경마 중계식 토론에 머물렀다. 그래야 자극적이니까. 깊은 고민이 전제되지 않은 분노표출과 가벼운 재미 정도로만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정치도 역시 그 수준으로 소비하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