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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레미제라블에 치유 받을 때가 아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대선 후폭풍이 터졌다. 바로 영화, 출판, 공연계에서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레미제라블‘ 열풍이다. 매체들은 영화 ‘레미제라블’이 대선에 패배한 사람들에게 힐링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일정 정도 맞는 말이다. 이 영화는 실패한 혁명을 다루고 있다. 젊은 지사들이 봉기했지만 중과부적으로 산화하고 만다. 우리도 이번 대선 때 젊은이들이 모처럼 투표장에 나섰지만 중과부적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화는 단지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청년들의 봉기 자체는 실패했지만, 민중의 힘에 의해 결국엔 새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관객들에게 대선 패배를 대리체험하게 한 다음, 빛을 비춰주는 것이다. 이래서 영화가 야권성향 관객들에게 씻김굿 역할을 하게 됐다.

 

‘레미제라블’에서 원래 유명한 노래들은 ‘I Dreamed a Dream’을 비롯한 발라드곡이었지만 이 영화에선 '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강하게 부각됐다. 이 노래가 바로 민중의 힘과 낙관주의를 상징한다. ‘오늘 우리가 죽으면 다른 이들이 일어서리. 이 땅에 자유가 찾아올 때까지’, 이런 식의 대사는 민주화 성향 관객들의 심장을 울리게 했다.

 

특히 이번 대선을 민주화세력은 민주대 반민주, 독재대 자유의 구도로 파악했기 때문에 ‘레미제라블’ 속 자유의 외침에 강하게 반응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엄혹한 현실에서도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 한 후에’, ‘벗이여 새날이 온다’며 낙관주의로 거듭되는 탄압을 이겨냈다. 이런 역사적 낙관주의는 거대한 감동으로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는데, 바로 그런 구도를 ‘레미제라블’이 보여줬다.

 

 

 

 

◆불안이 고전 신드롬을 만든다

 

모든 매체에서 대선 패배 힐링을 강조하는데, 일단은 맞는 말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영화 ‘레미제라블’ 관객 중 40대 이상이 39%를 차지한다고 한다. 물론 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했던 40대 관객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성세대 관객도 많을 게다. 이건 ‘레미제라블’이 현재 한국사회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단지 민주화세력만을 위한 진혼가는 아닌 것이다.

 

‘레미제라블’은 혁명도 하고 왕도 바꿨지만 왜 이렇게 삶이 고통스럽냐고 항변한다. 바로 우리 이야기 아닌가. 항쟁도 해봤고, 정권교체도 해봤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날로 어려워지기만 한다. 이번에 각자 지지한 후보는 달랐지만 이례적으로 투표율이 높아진 건, 그런 현실에 대한 분노가 대선에 투영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누구를 지지했건 ‘레미제라블’의 설정엔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선 때 누구를 찍었건 간에 모든 유권자들이 공유한 심리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분노와 불안이다. 2030 세대는 구체제에 분노해서 투표장으로 달려갔고, 5060 세대는 젊은 세대의 철없음과 야권의 행태에 분노하며 투표장으로 달려갔다. 이런 분노 밑바닥에 있는 것이 바로 불안이다. 내 삶이, 내 가족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캄캄한 암흑의 불안. 특히 은퇴를 앞둔 기성세대의 불안이 더 컸고, 그래서 분노도 더 컸으며, 따라서 투표율도 더 높았다.

 

이젠 무얼 믿어야 할지 가치관도 무너져내렸다. 독재시절 근대 산업화란 가치는 역사적 수명이 다 했고, 그걸 대체하겠다던 민주화 정권은 실망만 안겨줬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새로운 길을 열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더 큰 실망을 안겨줬다. 이젠 무얼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고전이고 인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자기계발서를 썼던 필자들이 요즘엔 인문고전 관련 서적을 내고 있다. 불안의 시대에 새 가치를 찾기 위해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럴 때 고전 ‘레미제라블’이 제시됐다. 영화 자체는 그렇게 재밌지 않고 대사 없는 뮤지컬이라 생소하기까지 하지만, 고전의 아우라가 그 지루함을 견디게 해줬다.

 

 

 

◆힐링보단 반성이 필요하다

 

야권은 지금 이 영화를 보며 치유 받을 때가 아니다. 이 영화엔 야권에게 보내는 뼈아픈 교훈이 담겨있다. 그걸 읽어내야 한다. 영화에서 젊은 지사들은 봉기하기만 하면 민중이 뜨겁게 가담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은 고립된 채 죽어갔다.

 

이번 대선 때 야권/민주화세력은 민주적 가치를 내세우고, 상대의 비민주성을 고발하기만 하면 국민이 움직일 걸로 철썩 같이 믿었던 것 같다. 그것이 아니고선 대선 기간 내내 민생경제에 대한 메시지가 실종된 현실을, 대선광고는 왜 그렇게 공허하게 만들었는지, 대선 직전에 ‘남영동 1985’는 왜 보러 갔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젊은 지사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에 도취되었다가 민중으로부터 버림받는다. 민주화/진보 진영에게 남 얘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민주화세력 입장에서 지금은 영화의 카타르시스, 눈물에 도취될 때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젊은 지사들이 왜 민중의 마음을 얻지 못했는지, 그걸 냉정하게 읽어내야 한다. 이 점을 놓치고 감동적인 노래와 설정에 빠져 힐링만 하고 있다가는, ‘레미제라블’이 민주화세력에게 프로포폴 마취주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