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악에 받쳤다. 부자에 대한 원망과 동경, 그 모든 면에서 그렇다. 이것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요즘 화제가 된 ‘청담동 앨리스’다. 이 작품은 어떤 선을 넘었다. 그리하여 신분상승 캔디 신데렐라 스토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작품은 문근영의 ‘청담동’ 진입기를 그 뼈대로 하고 있다. 청담동은 요즘 한국에서 가장 화려한 세계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양극화로 인해 도래한 신 계급사회의 정점인 것이다. 이 화려한 청담동은 평범한 세상과는 너무나 달라서, 일반인에겐 그저 ‘이상한 나라’일 뿐이다. 그곳에서 문근영은 길을 잃은 ‘앨리스’ 신세가 된다.

 

극중에서 문근영의 아버지는 대형마트 때문에 가게를 잃은 제빵사다. 재산이라곤 부채로 산 집 한 채뿐이다. 문근영은 유명 디자이너를 꿈꾸지만 돈이 없어 유학을 못 갔고, 동생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며, 애인은 부모 병원비 때문에 신용불량자 신세다. 직업이 있어도 지금까지 진 빚을 갚을 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문근영이 악녀가 된다는 이야기다.

 

 

 

 

◆이젠 돈 욕심도 사랑이다

 

과거 신데렐라 드라마에서 캔디들은 기본적으로 착했다. 그리 큰 욕심도 없었다. 최근에 나타난 변화라곤 캔디들이 조금 더 당차졌다는 것, 그리고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다는 것 정도다. 예를 들어 ‘시크릿가든’에선 하지원이 애인의 어머니가 끼얹는 물을 피하며 당차게 ‘아들을 제게 주십시오!’라고 했다. 또, 몸이 깨져도 액션배우라는 자기 직업에 충실했다. 청순가련하게 눈물이나 짜는 캔디들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하지만 착하고 순수한 건 최근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얼마면 되니? 얼마면 되겠어?’라고 하면 캔디는 ‘날 그런 속물로 보다니!’하면서 뺨을 때렸다. 왕자님이 캔디를 발견해서 따라다녔지, 캔디가 왕자님을 물색해서 계획적으로 접근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 건 ‘꽃뱀’이나 하는 짓이니까.

 

‘청담동 앨리스’에서 문근영은 기꺼이 꽃뱀이 된다. 초유의 꽃뱀형 캔디렐라의 탄생이다. 그러지 않고는 계급상승의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문근영은 수재인데도 재벌딸의 무시를 받는다. 평민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봐야, 고급스런 환경을 통해 어릴 때부터 길러진 안목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노력을 믿었던 캔디는 이런 현실에 분노하며, ‘그렇다면 부자 남자를 잡는 데에 올인하겠어!’라고 꽃뱀 변신을 선언한다.

 

여기까지는 따지고 보면 사랑보다 돈을 택한 심순애의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랑이 밥 먹여주지 않으니까, 사랑이 아닌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를 택한다는 이야기다. ‘청담동 앨리스’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사랑과 돈을 아예 합쳐버렸다는 데에 있다.

 

여기서 꽃뱀이 된 문근영은 여전히 순수하다. 여전히 사랑의 화신이다. 왜? 돈 보고 남자 좋아하는 것도 순수한 사랑이니까. 문근영의 친구인 소이현은 절규한다. ‘왕자님이 캔디에게 사랑만 주고 돈을 주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냐!’ 문근영도 온몸으로 웅변한다. ‘왜 집안, 재산을 따지면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그런 것도 사랑이다.’ 여기서 사랑과 돈의 구분은 무너진다. 그리고 근대도 무너진다.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은 근대의 발명품

 

사랑과 돈을 따로 떼어놓은 건 근대였다. 사랑과 결부된 결혼이라는 것은 근대의 발명품이다. 전통사회에서 인류는 순수한 사랑 따위로 결혼하지 않았다. 인류의 짝짓기에서 중요한 것은 집안 배경이었다. 대체로 남녀의 집안에서 적당히 잘 맞춰서 배필을 점지했고, 요즘도 근대화가 덜 된 나라에선 이런 식으로 결혼한다.

 

근대는 ‘낭만적인 사랑-결혼’ 세트를 발명했는데, 그것은 ‘개인’과 ‘공화국’의 발명으로 가능해진 일이었다. 전통사회에서 인간은 개인일 수 없었다. 모두 어떤 신분질서나 가문 배경의 한 구성품일 뿐이었다. 따라서 사랑의 주체도 될 수 없었다. 당사자보다 집안 배경이나 신분이 더 중요했다.

 

만민이 평등한 공화국은 인간을 이 거대한 신분질서에서 해방된 개인으로 만들었다. 이제 비로소 인류의 남녀는 개인대 개인으로 만나 낭만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재산이나 신분 같은 조건을 따지는 건 이 낭만적인 개인대 개인의 사랑을 파괴하는 구태요 봉건적 인습이다. 따라서 근대적 개인들은 조건을 무시하고 순수한 사랑을 해야 했고, 그 결실로 결혼해서 자신들만의 가정을 꾸려가야 했다. 이런 게 이상적인 결혼의 상이고 캔디들의 꿈이었다.

 

하지만 공화국이라는 게 어디 1인1표만으로 이루어진다던가. 밥 문제가 해결돼야 인간은 진정으로 해방된 개인이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밥 문제가 불안한 88만원 세대는 근대적 개인이 될 수 없다. 그들은 ‘빵빵한 배경’을 갈구한다. 배경 없이 가정 꾸렸다간 하우스푸어 되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청담동 앨리스’는 ‘낭만적인 사랑-결혼’이란 근대적 발명품을 폐기한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 ‘사랑도 결혼도 돈 보고 하는 게 당연하다’고 외친다. 순수한 캔디와 속물 꽃뱀의 구분은 사라졌다. 이젠 돈 욕심도 사랑이고 다이아를 향한 심순애의 욕망도 사랑이다. 캔디는, 악에 받쳤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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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랑이 밥먹여주냐가.. 제가 살아온 중 최근처럼 설득력이 있던 시절도 드물기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