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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베를린을 안 복잡하게 보는 법

 

베를린의 스토리가 너무 복잡해서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반응과, 너무 간단해서 밋밋하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왜 그러는 걸까?

 

첫째, 경험의 차이다. 이런 류의 첩보 영화를 많이 본 사람에겐 어디선가 본 듯한 간단한 구조다. 나도 영화 보기 전에 반전이 있다고 해서 ‘반전은 언제 나오나’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봤지만 반전은 나오지 않았다. 예측가능한 스토리로 갔을 뿐이다.

 

하지만 평소 이런 종류의 영화를 즐기지 않은 사람에겐 복잡할 수도 있다. 단순하게 착한 편과 나쁜 편이 나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죽도록 싸우다 끝나는 원초적 구성에 익숙하다면, 이 영화 스토리도 나름 반전이라고 느낄 수 있다.

 

둘째, 자막의 유무다. 서양 영화는 자막이 나오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한국 영화라고 해도 빠른 흐름 속에서 단편적으로 대사가 난무하는 상황이면 의미가 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와중에 북한사투리라면 더욱) 그럴 땐 차라리 마음을 비우고 흘러가는 대로 보면 편한데, 한 순간 한 순간 모든 것을 다 이해하려고 들면 영 요령부득이면서 답답한 느낌을 받게 된다.

 

셋째, 인물들을 정지화면으로 하나씩 설명해주고, 기본적인 상황전개도 마치 TV예능처럼 그래픽처리해서 잠깐씩 설명해줬으면 혼란이 덜 했을 것이다. 남한 요원, 북한 본국 요원, 북한 베를린 주재요원, 러시아 무기브로커, CIA 요원, 모사드 요원, 아랍 테러리스트, 독일 사람들이 아무 설명 없이 섞이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서 혼란을 초래한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익숙한 관객이 있고, 그렇지 않은 관객도 있다. 전자에 속한 관객이라면 ‘좌판은 크게 벌리려 했지만 4% 부족한 걸’이라고 했을 테고, 후자에 속한 관객이라면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개인차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첩보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스토리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는 게 실망을 방지할 방법이다. 그렇지 않은 관객이면 초중반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과 대사들을 일일이 다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마음 편히 보는 게 스트레스를 덜 받을 방법이다.

 

기본적인 설정을 간단히 이해하고 가면 혼란을 방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북한 베를린요원이 러시아 브로커를 통해 아랍테러리스트에게 무기를 팔려고 하는데, 이스라엘 모사드가 덮친다. 이스라엘 모사드에게 정보를 누가 왜 팔아넘겼느냐가 핵심이다.(일단 모사드와 아랍의 관계 정도는 알아야 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스토리가 아니다. 이 영화는 스토리보다는 액션에 치중한 작품이다. 액션만큼은 충분히 기대에 값한다.

 

최근 한국 영화 최고의 액션은 <도둑들>에서 마지막 아파트 총격 장면이었다. <도둑들>도 사실 스토리보다는 그 액션 하나 때문에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베를린>에 그에 못지않은 액션 장면이 나온다. 하정우 탈출 장면들이 그렇다. 이 장면들만큼은 헐리우드에 비해도 크게 손색이 없었다.

 

 

아쉬운 건 마지막 장면이었다. 너무 단순한 설정이었는데, 외국에서 예산의 한계 속에 작업하려면 그 길밖에 없었을 것 같다. 우리가 헐리우드보다 돈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도둑들>은 일단 외국에 나가서 눈요기를 시켜준 다음에 마지막 하이라이트 액션은 한국에서 속 편히 찍었다. <베를린>도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요즘 ‘댓글알바단’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에게 마음껏 금칠을 해주는 영화라 하겠다. ‘국정원이 댓글알바나 하는 집단이 아니다. 이렇게 안 보이는 곳에서 조국의 안전을 위해 목숨 걸고 뛰는 집단이다.’라고 말이다. 빨갱이와 사투를 벌이는 요원들과는 달리,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는 ‘윗분’들은 물정 모르는 정치꾼들일 뿐이다. 고로 최후의 승자는 ‘교차로에서 좌회전도 안 한다’는 정통 국정원 요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