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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지옥이 된 학교, 어쩌다 이렇게까지

 

최근에 의외의 사건이 있었다. 드라마 ‘학교 2013’이 흥행면에서 성공적으로 종영한 것이다. 이것이 의외의 사건인 것은 이 작품이 ‘칙칙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드라마에서 보길 원하는 것은 기분 좋거나 짜릿한 이야기들이다. 칙칙하고 우울한 이야기는 시청률이 잘 나오기 힘들다. 그런데도 ‘학교 2013’은 성공을 거뒀다. 이렇게 칙칙한 청소년 드라마가 방영될 수 있었던 것도 신기하고,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더 신기하다.

 

얼마 전까지 청소년 드라마는 주로 허무맹랑한 판타지에 가까운 내용들이었다. 거대 재벌의 2세이자 초절정 꽃미남인 남학생과의 로맨스라든지, 학생이 아이돌 스타가 되는 판타지 말이다. 그랬던 청소년 드라마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학교의 어두움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위기의식을 느꼈다는 뜻이리라. ‘학교 2013’의 주 시청자층은 10대와 40대였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공감하면서 보고, 이제 막 자식들이 청소년기에 진입한 부모들도 공감하면서 봤다는 이야기다.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기간에 ‘학교의 눈물’이라는 스페셜 다큐멘터리 시리즈도 방영되어 호평 받았다. 학교의 어두움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이다. 지옥 같은 학교. 수용소 같은 학교. 아무도 자식을 보내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의 학교. 그 진실을 TV 대중문화가 드러내기 시작했다.

 

 

 

 

◆청소년드라마, 희망에서 절망으로

 

과거 1980년대에 TV드라마에서 청소년들의 모습은 대체로 순수하고 밝은 이미지였다. 물론 당시는 독재 시절이라서 TV가 어두운 사회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이 미화되던 때였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서라도 80년대 학교 분위기는 요즘처럼 살벌하지 않았다. 그때도 입시경쟁 문제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압박이 심하진 않았고, 왕따 같은 비인간적인 풍경도 없었다.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하이틴 드라마들이 등장한다. '사춘기', '공룡선생',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등이다. 이때도 아이들의 이미지는 풋풋하고 순수했다. 전체적으로 발랄한 아이들의 이야기 그 자체였다.

 

2000년대 초반에 학교 붕괴가 논의되면서 학교를 다룬 드라마의 분위기도 조금 바뀐다. ‘학교’ 시리즈나 ‘반올림’ 같은 드라마들이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마냥 순수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왕따나 성추행 같은 그림자까지 드리워진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어두운 학교 이야기에 점점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러자 최근 몇 년 사이 드라마는 학교를 무턱대고 환상적인 공간으로 그렸다. ‘꽃보다 남자’에선 재벌 꽃미남 4인방이 등장했고, ‘궁’에선 대한제국의 왕자님이 등장했다. 앞에서 언급한 아이돌 스타 판타지인 ‘드림하이’ 시리즈도 나타났다. ‘장난스런 키스’는 만화 같은 하이틴 로맨스였고, ‘공부의 신’은 일류대에 보내는 것이 학교의 목적이라며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일류대에 갈 수 있다는 입시 판타지였다.

 

사랑이면 사랑, 성공이면 성공, 모든 면에서 희망으로 가득한 학교의 모습이었다. TV 대중문화가 이렇게 낭만적으로 학교를 그리고 있는 사이, 우리 사회는 학교 폭력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교권은 붕괴되고, 아이들의 인성은 파괴되어갔다. 모든 국민이 이제 학교라면 몸서리를 칠 지경이 되었다. 더 이상 이 현실을 외면한다는 건 역부족이었다.

 

그리하여 ‘학교 2013’이 등장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현실을 말한다. 교사의 권위가 붕괴된 학교, 기간제 교사를 무시하는 학교, 학부모와 학생의 이기심이 칼날처럼 부딪히는 전쟁터로서의 학교, 절망 그 자체인 학교 말이다. 모두가 알지만 드라마로는 표현하지 않았던 참혹한 현실, 그것이 그려졌고 시청자는 의외로 호응했다.

 

 

 

◆사이코패스 양성소인 학교

 

극에서 공부 잘 하는 학생은 자기 성적밖에 모르며, 잘못을 저질러도 죄의식이 없다. 교사가 나무라자 이렇게 말한다. ‘공부 못하면 착해도 소용없고 성격 좋은 것도 소용없잖아요.’ 공부 잘 해서 출세하는 게 최고라고 아이들을 닦달하는 사이에 교육적 가치는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나중에 ‘돈이 없으면 착해도 소용없고 성격 좋은 것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된다.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는 이제 사랑과 결혼도 돈 보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세태를 그렸고, 네티즌은 거기에 호응했다. 우리 사회의 가치는 이미 무너져내렸다.

 

그런 사람들이 학부모가 되어 교사를 닦달한다. 아이들을 경쟁승리밖에 모르는 공부기계로 만들라고 말이다. 교사는 지식전달기계로 전락하고, 스승의 권위는 추락하며, 학교는 입시 검투사들을 관리하는 수용소가 된다. 인간성? 따뜻함? 모두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다. 1등만 존엄하다. 낙오자는 그저 쓰레기다. 이게 우리 학교의 민낯이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두고 학교폭력을 엄단하자고 아무리 논의해봐야 공염불일 뿐이다. 몇몇 아이들을 처벌하면 뭐하나? 학교가 약육강식의 정글이고 그 속에서 아이들 모두가 살벌한 사이코패스로 커가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