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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7번방의선물, 미친 듯이 울고 싶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이 미쳤다. 말로만 듣던 미친 흥행이다. 개봉하자마자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모여들어서, 첫 주에 200만 돌파 둘째 주에 400만 돌파를 찍었다. 정확히 개봉 12일차에 약 420만 관객을 동원했는데, 작년에 1,200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의 경우엔 12일차에 약 340만 관객이었다. ‘광해’보다 초반 흥행이 더 폭발적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설 연휴가 지난 후엔 평일 관객 30만도 돌파했다. 작년에 평일 관객 30만을 넘어선 건 최고흥행작이었던 ‘도둑들’ 단 한 편이었다.

 

액션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슈퍼스타들이 나오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소품에 불과한 영화가 대작들을 찜 쪄 먹고 있는 것이다. ‘7번방의 선물’은 휴머니즘을 내세우며 웃음과 눈물을 짜낼 것이 너무나 뻔한, 속 보이는 명절용 기획 작품이다. 예고편만 봐도 어떤 영화일지 훤히 다 보여서 그야말로 안 봐도 DVD인 영화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개봉하자마자 터졌다.

 

보통 이런 영화들은 처음엔 조용히 흥행을 시작해서, 내용이 생각보다 좋으면 입소문이 퍼지면서 차차 흥행의 뒷심이 강해지는 양상으로 간다. 그런데 이번엔 입소문이 퍼질 새도 없이, 개봉하자마자 몰려든 것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한국인은 무얼 기다렸을까?

 

뺨 때려주길 기다렸다.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줘야 울 것 아닌가. 한국인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울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차에 울려주는 영화가 나온다니까 묻지마로 극장에 몰려간 것이다. 얼마나 애가 탔던지 작품이 입소문으로 검증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떼로 몰려갔다. 미친 듯이 울고 싶으니까.

 

 

◆추우니까 뜨거운 걸 찾는다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7번방의 선물’ 예고편을 보고 너무나 보기 싫어서 몸서리를 쳤다. 나는 ‘초딩 취향’이기 때문에 두들겨 부수는 영화는 B급이라도 열광하지만, 휴머니즘이 넘쳐 흐르면서 울고 짜는 영화는 ‘특특특 A급’이라도 질색이다. 그런 나와는 달리 사람들은 넘쳐 흐르는 휴머니즘을 쌍수 들어 환영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휴머니즘을 갈구하는 걸까?

 

간단하다. 추울 때 난로 찾는 법이다. 더울 땐 쳐다도 안 보는 것이 난로다. 그러다 추워지면 갑자기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단지가 된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을 때, 한 줌의 온기라도 아쉬울 때, 사람들은 뜨거운 것을 찾는다. 지금 사람들이 뜨거운 휴머니즘을 찾는 것은 세상이, 사람들 마음이 그만큼 춥다는 이야기다.

 

외환위기 때도 비슷했다. 그때 우리 사회엔 찬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주머니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최루성 멜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복고, 시름을 잊을 수 있는 조폭 코미디에 열광했다.

 

얼마 전에 ‘박수무당’이라는 조폭 코미디 영화가 다시 등장했다. 포스터만 보면 ‘누가 이런 영화를 찾을까‘ 싶었지만 흥행에 성공했다. 얄궂게도 주인공이 박신양이었다. 박신양은 조폭코미디 전성기 때 ’달마야 놀자‘를 성공시키고, 외환위기 직후 겨울엔 ’편지‘로 한국인에게 뜨거운 눈물을 선사했던 배우다. 외환위기와 지금이 묘하게 겹친다.

 

당시 조폭코미디가 줬던 자극성을 요즘엔 막장드라마가 주고 있다. 조폭코미디와 막장드라마의 흥행은, 사람들이 잔잔한 작품을 향유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대의 현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각박한 불황기엔 뭐가 됐든 센 자극을 줘야 한다.

 

최근엔 외환위기 때처럼 복고 열풍도 불고 있다. 7080복고, 90년대 복고, 가히 복고의 전성시대다. 따뜻함을 찾는 사람들의 욕구 때문에 아날로그 열풍도 불었다. 세시봉 현상, 버스커버스커 열풍 등이 있었고 LP가 다시 대중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설 명절 때 주목받은 신규 예능프로그램들도 대체로 따뜻한 인간미 계열의 작품들이었다.

 

◆비정상적인 흥행을 만들어낸 한국인의 심정

 

그리고 ‘7번방의 선물’ 열풍이다. 이 작품한테 뺨 맞고 울려고 한국인은 열광적으로 극장에 몰려갔다. 이렇게 보면 지금 한국사회가 마치 외환위기 때처럼 황량하게 얼어붙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추워서 사람들은 뜨거운 것을 찾는다.

 

최근에 제작진도 깜짝 놀란 흥행 사태가 두 번 있었다. 하나는 ‘7번방의 선물’이고 또 하나는 ‘레미제라블’이었다. ‘레미제라블’은 감독도 의아해할 정도로 한국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았는데, 이것도 휴머니즘과 관련이 있었다. ‘7번방의 선물’과 ‘레미제라블’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데, 둘 다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즉, 가족애다.

 

가족은 가장 원초적인 집단이다. 어떤 세파로부터도 나를 지켜주는 따뜻한 품이다. 가족은 내가 스펙이 어떻든, 외모가 어떻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지지해준다. 한국인은 지금 이런 사랑, 이런 둥지를 갈구하고 있다. ‘7번방의 선물’ 흥행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그런 소품이 천만 관객을 바라볼 정도로 흥행할 수 있을까? 정상이 아닌 사태다. 한국인의 심정이 지금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한국인은 지금 눈물을, 사랑을, 따뜻한 품을 간절히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