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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뺨 때리는 독한 어머니상이 대세

 

가족애의 시대에 어머니가 사라졌다. 아이들도 뜨고 아버지도 뜨는데 어머니만 조용하다. ‘레미제라블’, ‘7번방의 선물’, ‘내 딸 서영이’, ‘아빠 어디가’ 등 뜨는 건 모두 아버지의 이야기들이다. 어머니는 어디로 간 것일까?

 

요즘 뜨는 아버지는 무서운 압제자가 아니라 따뜻한 보호자다. 어머니가 뜨지 못하는 건 어머니의 이미지가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어머니들은 자식이 여자 친구 데려오면 뺨 때리고, 물 끼얹고, 며느리 구박하는 모습이다. 어머니가 이렇게 독기를 뿜어낼 때 아버지들은 옆에서 인간미를 풍긴다. 그래서 따뜻한 휴머니즘을 원하는 요즘 분위기와 어머니 캐릭터가 맞지 않는 것이다.

 

국민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보자. 서영이가 시집갈 때 시아버지는 서영이 본인의 사람됨을 인정해줬다. 반면에 어머니는 끝까지 반대하고, 나중에 서영이가 남편과 잘 지내는 것도 시샘했다. 서영이가 판사를 그만 두고 변호사를 하겠다는 것도 시아버지는 인정해주지만 시어머니는 반대했다. 판사가 변호사보다 더 폼 나기 때문이다. 서영이에게 탈법적 청탁을 넣는 것도 시어머니의 몫이다.

 

서영이 남동생이 장가간 집에선 장모가 툭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집안 식구들을 들들 볶는다. 장인은 장모에게 ‘돈돈돈 출세출세출세 체면체면체면’밖에 모른다며 인간미가 없다고 타박한다. 하지만 장인의 타박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이미 집안은 어머니가 장악했으니까. ‘롤러코스터-나는 M이다’에선 어머니가 집안의 서열 1위, 딸이 2위, 아들이 3위, 아버지가 꼴찌로 그려졌다.

 

그 전 국민드라마였던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도 아버지는 푸근하며 합리적인 캐릭터로, 어머니는 드세고 까탈스러우며 극성을 떠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내 딸 서영이’ 종영 후 최고 시청률 드라마로 떠오른 ‘백년의 유산’에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툭하면 때리고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기까지 한다.

 

이런 독한 어머니상이 주말드라마, 막장드라마에서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따뜻하고 푸근한 느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어머니상의 변화

 

조선시대 당시 시집 간 여자의 전형적인 상은 열녀효부 조강지처였다. 그랬다가 1900년대 초에 현모양처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현모양처는 남성이 가정의 주인이라는 호주제와 결합돼, 끊임없이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는 거룩한 어머니상으로 굳어졌다. 이래서 어머니는 한국인에게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이름이 된다.

 

일제 강점기 말 태평양전쟁에 휘말리면서 나라가 전시체제에 돌입한다. 청년들이 어머니를 부르며 전선에 끌려갔다. 이때 ‘불효자는 웁니다’ 같은 어머니를 그린 노래들이 많이 등장한다. 해방 후 한국전쟁 때도 어머니는 한민족이 애타게 찾은 이름이었다. 군사문화와 어머니는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어서, 1980년대에 인기를 끈 ‘우정의 무대’에서 군인들이 찾은 것도 언제나 어머니였다.

 

개발시대에 돌입한 후에는 이촌향도 바람이 불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어머니가 고향의 따뜻한 품을 상징하는 이름이 된다. 그러는 한편 어머니의 이미지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때 한국인은 초유의 입시경쟁에 돌입하게 되는데, 자식을 입시경쟁의 전사로 내모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역할이었다. 이와 관련해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푸근한 어머니의 이미지가 조금씩 변화한다.

 

70년대에는 부동산 투기의 시대였는데, 그 광풍의 최일선에 있었던 것도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들을 일컬어 ‘복부인’이라고 했고, 이때부터 어머니에게 ‘극성맞게 나댄다’는 이미지가 형성된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전히 어머니는 한민족에게 눈물이었다.

 

80년대 말에 민주화가 되면서 광주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는데 그 제목이 ‘어머니의 노래’였다. 학살 희생자의 아픔을 다룬 작품에 어머니라는 키워드를 제목으로 했을 정도로, 한국에서 어머니는 아픔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초라한 아버지 도끼눈 어머니

 

90년대 말에 격변이 일어난다. 외환위기로 인해 아버지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면서 어머니의 입지가 뛰어 오른 것이다. 또, 2000년대는 무한경쟁의 시대여서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경쟁에 매진해야 했는데, 어머니는 기꺼이 ‘조교’라는 악역을 떠맡았다.

 

이래서 ‘자식 교육을 위해선 할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아버지는 극성맞게 조교하는 어머니 옆에서 딴죽 걸다가 핀잔이나 듣는 신세가 됐다.

 

‘헬리콥터맘’도 어머니의 극성스러움을 표현한 말이고, ‘엄친아’도 그렇다.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기는 ‘엄마 친구 아들’이란 뜻인데, ‘아빠 친구 아들’이란 말은 없다. 어머니가 자식을 더 몰아댄다는 얘기다. 아파트값 이전투구를 선도하는 아파트 부녀회나 학교에 가서 도끼눈 뜨고 교사 몰아치는 자모회 이미지도 어머니에게 겹쳤다. 이런 변화에 TV 드라마의 어머니상까지 가세해 어머니를 독하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