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에 안철수를 비롯한 한국의 정치권과 네티즌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영화를 민주적 리더십의 전범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링컨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끊임없이 대화한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 주목 받은 키워드는 ‘소통’이었다.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소통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본다. 또, 요사이 한국에선 민주주의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링컨은 게티즈버그 연설의 장본인으로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야권은 영화 ‘링컨’에서 민주적 지도자의 모범을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링컨’은 그렇게 소통과 민주주의만을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속에서 링컨은 헌법수정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국민을 속이고, 의회를 속이고, 의원매수를 서슴지 않는다. 때문에 이 영화를 민주적 리더십의 전범으로만 보는 건 일정 정도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링컨’은 무엇일까? 이건 신화다. 미국의 건국신화 혹은 영웅신화라고 할 수 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속의 영웅이야기처럼, 미국인들이 세계 최강대국이자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라고 믿는 ‘위대한 아메리카’를 만들어간 영웅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한 마디로 미국인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영화다.

 

이 영화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세 번 받은 사람이 됐다. 이건 단지 연기를 잘 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가 아카데미의 구미에 맞는 작품들을 잘 골랐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그는 ‘나의 왼발’과 ‘데어 윌 비 블러드’로 각각 남우주연상을 받았었는데, ‘나의 왼발’은 영화제가 선호하는 휴머니즘이 깔린 작품이었고,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석유자본의 형성을 중심으로 본 미국의 건국신화였다. 록펠러 등을 떠올리게 하는 영웅신화이기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천재성

 

1970년대에 미국에선 매우 놀랍게도, 사회비판적인 영화들이 인기를 끌었었다.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저항이 유행이었다. 그런 시기에 스필버그는 ‘조스’라는 대형 오락영화를 만들어 오늘날의 블록버스터 바람을 선도했다. 비판적 시선하고는 애초부터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70년대에 조지 루카스도 ‘스타워즈’로 오락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

 

80년대가 되자 이 둘은 함께 ‘레이더스’(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만든다. 이 작품은 서구인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담긴 대중문화를 말할 때 꼭 예시로 거론된다. 곧이어 스필버그는 ‘이티’라는 초대형사고를 친다. 이 작품 이후 그는 동심을 상징하는 영화인이 되었다. 80년대엔 스필버그가 만들어내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오락영화들이 흥행계를 휩쓸었다. 60~70년대의 비판적 영화들은 아이가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사실 사회나 인간의 ‘민낯’은 어른도 직시하기가 버겁다. 반면에 스필버그류의 동심 영화는 모두가 편안히 볼 수 있는데, 이런 영화들은 80년대의 보수적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다.

 

90년대가 되자 스필버그는 컴퓨터그래픽이라는 신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쥐라기 공원’이다. 스필버그의 공룡은 전 세계 어린이들을 열광케 한 동시에, 심형래를 비롯한 다른 나라 영화인들을 절망케 했다. 또 한국에선 사회지도층이 모두 열광하는 기현상도 나타나, 한동안 ‘현대자동차 수만 대 파는 것과 ’쥐라기 공원‘ 한 편 수익이 맞먹는다’는 말이 유행하며 너도나도 문화산업진흥을 부르짖게 됐다.

 

한 사람이 역사에 남는 사고를 한 번 쳐도 엄청난 것인데 스필버그는 ‘조스’, ‘레이더스’, ‘이티’, ‘쥐라기 공원’ 등 여러 번이나 대형사고를 쳤다. 천재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스필버그의 거장 도전기

 

세계 최고의 오락영화 감독. 불멸의 천재. 스필버그는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는 예술영화의 작가까지 노렸다. 그래서 나온 것이 ‘컬러 퍼플’. 아카데미는 이 영화를 감독상 후보에서 제외하며 스필버그를 비웃었다.

 

하지만 도전은 계속 됐고 결국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링컨’ 등으로 결실을 맺기에 이른 것이다. 아카데미가 인정해준 이 영화들은 모두 미국의 자부심과 관련되어 있다. 히틀러에 맞서 자유세계 민주주의를 지켜낸 미국이라는 자부심 말이다. ‘링컨’은 흑인을 해방시켜 인권을 지킨 미국이라는 자부심이다. 결국 적당히 문제의식이 있으면서 근본적으론 보수적인 스필버그의 영화세계가 아카데미상하고 맞아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스필버그가 작가에 도전하면서 점점 영화의 오락성이 떨어져간다는 점이다. ‘링컨’은 본격적으로 재미없다. 완전히 영화제 작품상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라스트 갓파더’ 기획 당시에 심형래에게 감독을 그만 둘 것을 권고했었는데, 스필버그에겐 거장을 그만 둘 것을 권고하고 싶다. 스필버그가 만드는 적당히 작품상스러운 영화들보다 천재적인 오락영화가 더 빛난다. 개인적으로 스필버그가 옛날처럼 또 사고를 쳐줬으면 좋겠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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