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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여성혐오의 시대

 

여성혐오의 시대다.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마저도 여자를 싫어한다. ‘개그콘서트’의 ‘남보원’ 코너는 여성을 성토하는 내용이었는데 남녀가 함께 박수 치며 호응했다. 여자들이 이렇게 비호감이 되자 황금시간대 주말 예능에선 여자들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무한도전’, ‘1박2일’, ‘런닝맨’, ‘정글의 법칙’ 등 거의 다 남자들 이야기다. 여자들은 한두 명 정도 꽃의 역할로 끼어있거나 아예 없다. 예능에서 여자들한테 주어지는 역할은 미모로 분위기를 돋우는 것이거나 아니면 사생활 폭로 막말 토크 같은 억척 수다 정도로 한정된다.

 

‘무한도전’의 여성판인 ‘무한걸스’가 시작될 때 관련해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었다. 난 시청자들이 여자를 싫어하기 때문에 잘 될 가능성이 낮다고 답했었는데, 정말로 곧 폐지됐다. 여배우들을 내세운 ‘토크클럽 배우들’도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종영했다.

 

여러 명의 배우들이 나서는 멀티캐스팅 영화에서도 주로 남자들이 활약한다. 여배우는 한두 명 겨우 끼어있거나 아예 없다. 남자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는 부지기수지만, 여배우가 전면에 나서는 작품은 한 시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다. 드라마에선 주로 여배우들이 욕을 먹는다. 툭하면 터지는 것이 여배우 민폐 논란이다.

 

 

 

 

◆현실에서도 만연한 여성 때리기

 

네티즌이 여자를 조롱하는 대표적인 키워드 중의 하나가 바로 ‘김여사’다. 교통사고는 언제나 일어나는 법인데, 유독 여성 운전자의 사고 사진만 따로 모아 ‘김여사’의 행태라며 비웃는다.

 

인터넷에선 또, 남자의 흉악범죄와 여자의 경범죄가 동급으로 취급된다. 여자가 공공장소에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즉시 ‘00녀’라는 딱지가 붙으며, 엄청난 악플과 신상털기라는 사회적 극형이 선고되는 것이다. ‘감히’ 남자의 키를 따진 여자에겐 ‘루저녀’라는 낙인이 찍혔고, 인민재판 수준의 공격이 가해졌다. 남자가 사고를 치면 그 행위에 대한 악플만 붙지만, 여자가 사고를 치면 ‘여자들이란...’이라며 여성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댓글이 붙게 마련이다. 여자들에 대한 혐오감이 만연하다보니 요즘엔 툭하면 나오는 것이 여성부 폐지론이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대중문화 속의 여성 표현에 문제가 있다. 드라마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각인되는 여성 캐릭터는 ‘악녀’다. 요즘 드라마들이 독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여배우들이 주로 ‘독함’을 맡고 있다.

 

최근에 시청률이 가장 높은 ‘최고다 이순신’, ‘백년의 유산’, 돈의 화신‘에는 공통적으로 대립되는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착한 여주인공은 언제나 무능하거나 남자의 도움을 받는 반면, 유능하고 똑똑한 여자는 성격이 독하다. 미니시리즈를 보면 여주인공 한 명당 남자 두 명씩 붙어서 도와줘야(백기사 흑기사) 여주인공이 겨우 사람구실을 하게 된다. 이러니 여자는 의존적이라는 관념이 점점 강화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 연출진은 유독 여배우의 외모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예컨대, ‘추노’에서 다른 배우들은 모두 지저분한 분장을 했었지만 몇몇 여배우들은 시종일관 깨끗하고 섹시하게 표현됐었다. 이런 것이 여자를 인격체가 아닌 꽃처럼 여기게 만들고, 여배우가 자기 예쁘게 꾸미는 데만 몰두하면서 작품에 해를 끼치는 존재, 그러므로 여자는 책임감과 프로의식이 없는 존재라는 관념을 강화한다.

 

예능에서 여자는 주로 비명을 맡는다. 비명을 ‘꺄악꺄악’ 지르다가 남자의 도움을 받는 역할이다. 예능 제작진은 여자가 비명을 지를 만한 설정을 일부러 하는 경향이 있다. 토크쇼에서 여자는 명품백, 반지, 이벤트 등에 ‘환장’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것은 여자가 허영에 찌든 존재라는 관념을 강화한다.

 

 

 

◆찌질한 남자들의 화풀이

 

여자들도 일정정도 원인제공을 했다. 밥값보다 비싼 커피값으로 상징되는 ‘된장녀’ 신드롬, 명품 호황, 여자들이 선도한 해외여행 열풍 등이 10여 년간 누적되다보니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쌓였다. 여자들이 럭셔리한 데이트와 안정된 스펙을 남자에게 요구하는 것도 남자들의 앙심을 초래했다.

 

여기에 남자들의 ‘찌질함’도 크게 작용했다. 21세기 들어 남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점점 불안정해졌는데 반해 여자의 요구는 커졌고, 여자의 사회진출도 활발해졌다. 그러자 분노가 생겨났고 역차별론도 터져나온 것이다. 또, 20세기 초에 양극화에 신음하던 미국 남자들이 여성 운전자에게 화풀이하며 마음을 달랬던 것처럼, 불안정한 남자들이 만만한 여자에게 화풀이하는 측면도 있다. ‘찌질이들의 묻지마 증오’랄까? 또, 남녀가 다 힘들어졌기 때문에, 여자의 의존적 이미지가 남녀 모두에게 더 얄미워지기도 했다. 또, 악녀 이미지는 여자에게서 인간미를 삭제시켰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은 여전히 유교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남녀차별국이다. 이런 나라에서 기득권집단인 남자들이 여자 때리기로 소일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건 낯 뜨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