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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군대의 귀환

 

과거 ‘우정의 무대’나 ‘유머1번지-동작그만’ 이후로 한동안 군대코드는 크게 각광 받지 못했었다. 그랬던 군대가 최근에 돌아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케이블TV에서 먼저 감지됐다. 바로 ‘푸른거탑’이다.

 

‘푸른거탑’은 드라마 ‘하얀거탑’을 군대이야기로 패러디한 작품이다. 원래 공감 예능으로 유명한 ‘롤러코스터’의 한 코너로 시작했었는데, 심상찮은 인기를 얻자 아예 독자적인 프로그램으로 빠져나왔다. 얼마 전에 최종훈의 음주운전 사건으로 인터넷이 떠들썩했었다. 그는 전혀 유명 연예인이 아니었는데도, 단지 지금 ‘푸른거탑’에 출연중이라는 이유만으로 핫이슈의 주인공이 됐다. 그럴 정도로 ‘푸른거탑’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네티즌이 '레미제라블‘을 패러디해서 만든 ’레밀리터리블‘ 동영상도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영상은 군대에서 끝도 없이 제설작업을 해야 하는 사병들의 처지를 ’레미제라블‘의 죄수에 빗대 공감을 얻었다.

 

군대의 인기는 결국 지상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 예능에 군대가 나타난 것이다. 바로 ‘일밤’의 새 코너 ‘진짜 사나이’다. 이 코너가 성공할 수 있을 지는 향후에 전개될 내용에 달려있겠지만, 어쨌든 군대가 주말 예능에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군대의 인기를 증명해준다. 

 

 

◆왜 군대일까

 

일단 트렌드의 순환이다. 군대이야기는 한국에서 징병제가 유지되는 한 사라질 수가 없다. 수많은 남성들의 추억이 군대에 서려있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서 2~3년 체험한 것을 평생 술안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이야기는 주기적으로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왜 유독 ‘지금’ 뜨느냐는 점과 어째서 여자들까지 군대이야기에 빠져드느냐는 의문이다. 원래 여자들은 남자들이 술 먹고 군대 축구 이야기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지금 여자들까지 군대 콘텐츠에 환호할까?

 

이미 유사 군대이야기가 그동안 계속 인기를 끌었었다. 바로 리얼버라이어티다. ‘무한도전’, ‘1박2일’, ‘정글의법칙’ 등 그동안 인기를 끌었던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모두 남자의 고생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은 원조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벽에 부닥치면서 새로운 소재를 찾는 시점이다. 그래서 군대 소재가 쉽게 채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요즘은 ‘찌질남’, ‘바보남’들의 전성시대다. 군대이야기도 이런 흐름과 아주 잘 맞는다. 사회에서 멀쩡하던 사람도 예비군 제복만 입으면 찌질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특히 겨울에 깔깔이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벌벌 떨면서 궁상을 떠는 모습은 찌질의 극치로서, 요즘 트렌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군대는 철저한 서열사회이기 때문에 군대이야기를 통해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릴 수 있고, 위에서 명령내리는 사람들을 풍자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이 공감과 카타르시스로 작용한다. 한국사회 자체가 군사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군대이야기는 곧 우리 사회 인간사의 축약도이기도 해서 더욱 공감도가 크다.

 

최근까지 복고와 힐링의 시대였다. 군대이야기는 이런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군대는 아련한 추억, 사회적 배경이나 간판을 따지지 않는 순수했던 인간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군대의 풍경은 웬지 촌스럽기 때문에 군대를 체험하지 않은 사람의 복고감성도 건드린다. 이런 이야기들을 우울하거나 무겁지 않게, 가볍고 코믹하게 그린 것이 군대코드 인기의 원인이라고 하겠다.

 

◆대학생들까지 군인 흉내 내는 나라

 

사람들이 지금 군대를 찾는 것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도 있다. 군대는 집단이다. 반면에 지금 사회에선 집단이 해체되고 있다. 평생동료로서의 직장도 사라져가고, 학교와 가족 공동체도 해체되는 추세다. 철저히 원자화된 개인의 무한경쟁사회. 무력해진 사람들은 집단의 품에 안기고 싶어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이 커질 때 국가주의나 민족주의가 번성한다. 대공황 때 독일 젊은이들은 나치집단의 제복에 홀렸었다.

 

가볍게 군대를 추억하며 인간미를 느끼는 정도까지는 좋다. 문제는 정도를 넘었을 때다. 얼마 전에 한 수도권 예술대에서 군대를 방불케 하는 군기교육 엠티문화가 성행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다. 한 지방국립대에선 엠티 때 선배가 조교군복을 입고 나타나 기합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무력해진 젊은이들이 집단성 속에 함몰되는 것이다. 왕따도 집단문화의 일종이다. 타자를 배제함으로서 나머지 사람들이 강고한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큰 아이들이 대학에 가선 군대식 엠티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집단성이 강화되어가면 주체성이나 시민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공화국의 지속가능성이 걱정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