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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싸이는 어떻게 21세기의 총아가 되었나

 

싸이의 ‘젠틀맨’이 발표직후 곧바로 빌보드차트 12위에 올랐다. 놀라운 것은 단 이틀 동안의 성적만 순위산정에 반영됐다는 점이다. 일주일 동안의 성적이 모두 반영되는 이번 주엔 몇 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가 커진다.

 

‘젠틀맨’이 단 이틀 동안의 성적으로 빌보드 12위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빌보드차트 순위산정방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지난 ‘강남스타일’ 때는 미국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위 상승속도가 느렸고 끝내 1위를 하지도 못했었다. 이 일이 결정적으로 빌보드의 변화를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빌보드차트는 원래 싱글음반 판매량과 라디오 방송 횟수 중심으로 순위를 산정했었다. 그런 방식이 과거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된 이후에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인터넷 쌍방향 소통, 디지털 문화 등이 대중문화계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젠 대중의 선호도나 여론의 향배를 알려면 인터넷을 반드시 봐야 하는 시대가 됐다. 한국보다 인터넷 보급 속도가 늦었던 미국도 결국엔 인터넷 시대에 진입했는데, 빌보드는 그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다. 그러다 ‘강남스타일’ 사태라는 초유의 사건을 겪으면서 마침내 인터넷을 순위산정에 큰 폭으로 반영하게 된 것이다. 싸이는 빌보드의 순위산정 방식을 바꾸게 하고, 곧이어 새로운 신곡으로 자기자신이 바뀐 산정방식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스스로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셈이다.

 

 

 

 

◆싸이, 새 시대의 상징이 되다

 

인터넷 시대는 유희와 함께 시작됐다. 한국에서 인터넷 혁명이 발발한 이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무차별적 패러디로 대표되는 유희본능이었다. 이젠 과거의 엄숙주의, 도덕주의는 설 자리를 잃었다. 모든 것은 웃음의 대상에 불과했다. 네티즌은 연예인, 정치인, 동식물, 일반인, 사물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미지를 가져다가 웃음거리로 재창조해냈다.

 

의미는 없었다. 어느 이름 모를 강아지가 ‘개죽이’로 재탄생되고, 누군가는 ‘광년’이 되었는데, 왜냐고 물으면 나오는 답은 ‘그냥 재밌으니까’뿐이었다. 깊은 의미가 사라진 재미의 시대, 즉 B급의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엔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있었지만, 이젠 일반인도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패러디 창작물을 전 세계인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 패러디를 통해 2차, 3차 창작물을 만들었다. 이 틈바구니에서 튈려면 점점 세지는 수밖에 없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웬만큼 자극적이지 않으면 점점 관심이 사라져갔다. 노골성, 자극성이 새 시대의 특징이 되었다.

 

기존에 정해졌던 틀은 해체되어갔다. 장르의 구분이라든가, 장소에 따른 격식의 구분이라든가, 모든 것은 파괴되었다. 이젠 개그맨이 가수를 하고, 가수가 개그를 한다. ‘개가수’의 탄생이다. 개가수는 음악이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퍼포먼스 위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음악은 감상대상이라기보다, 보고 즐기고 버리는 소비상품이 되었다.

 

이 모든 변화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싸이 현상’이다. 싸이의 캐릭터와 뮤직비디오는 말하자면, 전 지구인에게 투척된 패러디용 ‘떡밥’이었다. 싸이는 ‘나를 웃음거리로 삼으라’며 인터넷 패러디 전장의 한 복판으로 걸어들어갔고, 마침내 그 세계의 왕자가 되었다. 싸이는 전 세계인에게 ‘개죽이’가 된 것이다.

 

단순히 싸이라는 한 개인이 어느 특정한 히트곡을 낸 게 아니라, 세계적인 인터넷 유희 현상의 아이콘으로 당대를 대표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자극성면에서도 싸이는 충분히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켜줬고, 인터넷 유희가 아닌 현실세계의 유희 즉 클럽댄스파티에도 최적의 유용성을 제공해줬다. 빌보드로선 이런 흐름을 반영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따라서 한국인 최초의 빌보드차트 1위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다.

 

 

◆새 시대는 과연 좋은 시대일까?

 

이번 신곡 ‘젠틀맨’은 한국보다는 서양정서에 가깝다. 그래서 처음엔 국내여론이 안 좋았지만 세계적 선풍이 일어나면서 싸이 찬양론이 득세하고 있다. 싸이에 대해 조금만 안 좋게 얘기하면 악플이 달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그럴 이유는 전혀 없다. 서양에서의 인기가 작품성을 보증해주는 것도 아니고, 취향과 예술의 기준이 서양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B급의 자극성, 유희와 퍼포먼스로 상징되는 새 시대의 경향성 자체가 그리 찬양할 대상만은 아니다. 과거에 지나친 엄숙주의, 도덕주의, 허위의식 등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과도한 자극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재미가 의미를 압도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옛날로 다시 돌아가자는 건 아니고, 다만 최근 경향성의 문제와 싸이의 정확한 좌표 정도는 인식하고 응원해주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