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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조용필은 젠틀맨이 아니었다

 

싸이 때문에 사전을 바꿔야 할 판이다. 원래 젠틀맨은 신사라는 뜻이었지만, 싸이의 <젠틀맨> 때문에 ‘겉으론 멀쩡해보이지만 속은 지저분한 가짜 신사’라는 뜻이 하나 더 생겨버렸다.

 

싸이식 젠틀맨의 의미에 정말 잘 부합하는 사례가 최근에 있었다. 한 대기업 임원이 비행기에서 여승무원에게 ‘진상짓‘을 했다는 뉴스였다. 그야말로 <젠틀맨>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그 자체인 사건이다. 이 일에 대해 네티즌은 아주 크게 분노했다. 이건 단순히 그 한 사건에 대한 반응만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된 사회적 분노가 터져 나온 사태이기도 했다.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대기업의 위상은 구름을 뚫고 올라가버렸다. 하지만 대기업이 그런 위상에 걸 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 하고 있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대기업 임원의 위상도 별나라로 넘어가버렸다. 변호사나 의사 등 전통적인 1류 직업군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기업 임원의 위상이 수직상승한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 임원도 그런 위상에 걸 맞는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것 같지 않다고 사람들은 여긴다.

 

그러던 차에 어느 대기업 임원이 승무원 앞에서 군림하며 특권층 행세를 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사회적 공분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렇게 강자가 특권을 누리며 군림하는 모습을 보일 때 한국사회에선 국민정서법의 철퇴를 맞게 된다. 그런 강자를 흔히 꼰대라고도 부른다. 기득권층으로 신사의 품위를 가장하지만 실은 약자 위에서 군림하는 꼰대 말이다. 젊은 세대는 이런 꼰대들을 아주 싫어해서, 이것이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의 소통이 단절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조용필은 한국 가요계의 최고봉, ‘가왕’이다. 절대적 강자라고 할 수 있다. 나이도 무려 환갑이 넘었다. 기성세대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조용필의 신곡에 열광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한국에서 세대갈등이 사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조용필은 기내에서 특권층 행세를 한 싸이식 젠틀맨, 대기업 임원하고는 전혀 달랐다. 조용필은 위에서 군림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당대와 소통하려 했다. 그래서 아이돌보다도 더 세련된 노래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통하려면 윗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소통은 수평적 관계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통은 또 겸허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 대기업 임원처럼 승무원을 무시하며 군림하는 자세에선 소통이 될 수 없다. 조용필은 당대의 목소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였고, 자신의 스타일을 혁신해나갔다. 그리하여 정통록, 발라드, 트로트 등을 하던 그가 이번엔 경쾌하고 세련된 모던록을 발표했다.

 

그러자 당대는 열광적으로 호응했고 후배들도 새삼 대선배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를 무조건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젊은 세대가 싫어하는 건 싸이식 젠틀맨, 혼자 잘났다며 약자 위에서 군림하는 꼴불견 신사일 뿐이다. 조용필처럼 겸허한 소통 의지와 열정을 가진 기성세대에게 젊은 세대는 얼마든지 환호를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이제 조용필은 단지 가수로서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감동을 안겨주는 거인으로 우뚝 섰다. 조용필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한국사회엔 존경 받는 선배가 늘어나고 세대갈등은 치유될 것이다. 싸이식 젠틀맨은 <젠틀맨> 뮤직비디오에서나 나오고, 실제 현실엔 조용필이 많아지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애꿎은 감정노동자들에게 진상짓 좀 그만 떨자. 진상짓은 <젠틀맨> 뮤직비디오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