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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조용필은 정말 자기를 버렸을까

 

조용필의 신곡이 나온 후 그가 당대 트렌드와 호흡하는 변신을 보여줘서 놀랍다고들 했다. 그랬더니 조금 후에 조용필이 자기 음악색깔을 버리고 젊은층의 기호에 영합하는 변신을 해서 실망이라는 시각이 나왔다. 반대쪽에선 오히려 그런 변신을 해서 감동이라고 했다. 어떤 방송에선 싸이와 비교하면서, 싸이는 기존 색깔을 고수한 반면에 조용필은 크게 변신한 차이점이 있다고 했다.

 

정말 조용필은 변신을 하긴 한 것일까? 그게, 간단히 말하자면 했다고도 할 수 있고 안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건 싸이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싸이가 원래 미국스타일이고 클럽스타일이었긴 했지만 <젠틀맨>처럼 완전히 한국의 일반적 가요정서를 무시하지도 않았었다. 이번엔 완전히 미국과 골수클럽스타일 쪽으로 확 넘어갔다는 점에서 변신이라면 변신이고, 아니라면 아니다.

 

조용필은 이번에 전자음이 섞인 경쾌한 모던록을 선보였다. 그런데 조용필의 음악색깔은 원래부터가 록이었고 전자음도 아주 일찍부터 전향적으로 도입했었다. 1970년대부터 밴드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원래부터 해왔던 음악인 록을 했다는 점에선 변신이 아니고, 록은 록인데 옛날 스타일이 아닌 요즘식 모던록이라는 점에선 변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근본적 정체성은 지켜가면서 이 시대의 분위기에 맞게 약간의 변화를 준 것이다. 이 시대의 분위기란 물론 요즘 트렌드를 가리킨다. 조용필은 과거에 록 중심의 음반을 내면서 자신이 젊은층의 대변자임을 느낀다며 ‘영원히 시대의 한 가운데에 서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시대의 한 가운데’란 인기스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흐름과 소통하며 함께 호흡하는 뮤지션을 일컫는 말이다. 자기 스타일에 갇혀서 옛날에 성공했던 방식만 고집하는 꼰대 말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 앨범 역시 조용필의 원래 정신에 부합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완전히 젊은층의 취향, 즉 시류에 영합한 것까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모던록이 젊은 음악이긴 하지만 시류는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건 댄스음악이나 발라드지 록 따위가 아니다. 록은 한국에서 찬밥이 된지 이미 오래인 장르고 모던록은 홍대인디밴드들이나 하는 음악이다. 그러므로 조용필의 록을 두고 시류에 영합했다고까지 하긴 힘들다.

 

조용필은 전성기 때 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트로트, 발라드, 가곡, 동요, 민요 등 당시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주류 장르를 다 섭렵하는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했었다. 단지 섭렵만 한 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탑의 자리에까지 올랐었다. 심지어 명창과 함께 판소리 부분공연까지 했다. 이런 다양성이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전 국민에게 인기를 얻은 힘이었는데, 그가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가 딱 하나 있다. 바로 통키타 포크다. 따라서 만약 이번에 그가 통키타를 시도했다면 깜짝 변신이었겠으나, 록밴드 음악을 선보인 건 그리 엄청난 변신은 아니다.

 

또, 자신의 음악을 록 중심으로 심화시켜가면서 조금씩 당대 트렌드에 맞게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전혀 낯선 모습이 아니다. 80년대 당시에도 그는 그렇게 활동했었다. 사실 당시에 그는 변화를 모색할 필요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이미 당대 최고였고, 거국적 오빠부대가 있었으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변화를 모색했다. 이건 그가 음악에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70년대 후반 대마초 때문에 활동정지를 당했을 때 그는 가요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우울한 시간을 보내던 차에 우연히 한오백년을 듣게 됐다. 거기에 미쳐서 전국에 있는 산을 돌아다니면서 목에서 피가 터지도록 판소리 연습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다시 활동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그저 좋아서, 그저 미쳐서 한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조용필은 자기 목소리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조용필은 이렇게 원래부터 음악에 미쳐서, 계속해서 변화를 모색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당대 대중의 기호를 대단히 중시해서 완전히 비대중적인 길로는 이탈하지 않았다. 이번 앨범에서 보인 변화의 폭도 기존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각에서 이번 앨범은 남이 만들었기 때문에 조용필의 음악이 아니라고도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조용필은 원래 자기가 만든 곡 위주의 앨범과 남이 만든 곡 위주의 앨범을 번갈아 냈었다. 그런데 남이 만들었다고 해서 요즘 아이돌이 기획사가 시킨 노래 부르는 것처럼 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이 음악감독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가사도 자신이 주제를 구술하고 작가가 써오면 스스로 최종수정을 해서 확정지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만들었더라도 조용필의 색깔이 관철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조용필을 보면서 몇 번 눈가가 뜨거워졌었다.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기타 하나 들고 떠돌다, 기껏 가수 데뷔했더니 바로 활동정지 당하고, 컴백한 후에는 허울 좋은 국민가수지만 사실은 레코드사에 노예계약으로 매인 신세로 활동하고, 그래도 그 오랜 세월 끝없이 자기 정체성을 지켜가면서도 새 음악을 모색하는 그의 인생, 그 의지가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조용필에 대한 열광의 핵심은 ‘나이’다. 나이 먹으면 퇴물 되고, 나이 먹으면 꼰대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에 조용필은 충격을 안겨줬다. 요즘 조용필의 목소리는 전성기 때 같지 않다. 워낙 조용필 찬양이 대세가 되다보니, 그의 목소리가 30대보다도 젊다는 둥 낯 뜨거운 기사까지 나오지만 사실 과거의 폭발적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 어차피 나이엔 장사가 없으니까. 하지만 역시 놀라운 것은 나이다. 그 나이에도 계속 현역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이것이 음악성을 뛰어넘어 인간적인 차원에서 감동을 준다. 앞으로도 계속 조용필 ‘옵빠’의 감동적인 변화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