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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LP의 귀환, 아날로그는 영원하다

 

한때 모든 음향기기가 CD로 바뀌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1990년대 초다. 당시 음반, 음향업계 측에선 CD가 ‘궁극의 매체’라고 선전했었다. 첫째, 궁극의 고음질이라는 점. 둘째, 반영구적, 사실상 영원히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CD의 제작원가는 카세트테이프에 비해 많이 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장점을 들어 가격을 두 배 이상 받았었다. 소비자들에게 CD는 천상의 소리를 약속해주는 기적의 신물처럼 느껴졌고, 기꺼이 그 비싼 돈을 주고 CD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류에게 그동안 보급됐던 오디오기기가 일제히 교체될 기회였다. 음반사 입장에선 과거에 녹음됐던 음악들을 CD로 다시 팔 수 있는 기회였다. CD업계는 1980년대 말부터 고급스런 CD 청음회까지 개최하며 CD의 우수성을 강조했고, 그런 과정을 거쳐 LP레코드와 관련 기기는 폐물이 되었다.

 

그런데 영원을 약속했던 CD의 지위가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다. 궁극의 음질이라더니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음질의 차세대 포맷이 논의 중이고, 그런 논의와 상관없이 디지털 음원이 CD업계를 고사시키고 있다. 한편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LP가 돌아오고 있다. 미국에선 작년에 유일하게 성장한 음반시장이 LP시장이었고, 일본에서도 최근 연 100%씩 성장하고 있으며, 한국에선 사라졌던 LP공장이 다시 생겼다. 백화점 매장에 턴테이블이 다시 등장했고, 30~50대는 물론 20대까지 그 고객이라고 한다. 이름하여 LP의 귀환. 아날로그는 죽지 않았다.

 

 

 

 

◆LP의 추억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축음기는 발명왕 에디슨이 만들었지만, 이내 표준 경쟁에서 밀렸다. 그는 원통형 레코드를 고집했는데 이것은 음질도 좋고, 편리성은 있을지 몰라도(녹음가능) 대량생산에 불리했다. 기술적으론 적격이어도 산업적으로 결격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독일 출신 에밀 벌리너가 만든 원반형 레코드는 붕어빵처럼 찍어낼 수 있었고, 그래서 결국 표준으로 굳어졌다.

 

처음엔 SP(Standard Playing) 레코드였는데, 이것은 음질도 나쁘고 재생시간도 턱없이 짧았다. 2차 대전 이후 고음질에 재생시간도 긴 레코드가 개발되는데 그것이 바로 LP(Long Playing) 레코드다. LP의 등장으로 이제 클래식 대곡도 ‘전축’으로 들을 수 있게 됐고, 대중음악 분야에선 10여 곡을 묶은 앨범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앨범의 그런 특징을 활용해 수록곡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음반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대중가수가 예술가의 칭호를 받게 된 계기였다. 바로 비틀스가 이런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한국에선 전축이 중산층의 로망이었다. 거실에 TV와 전축, 부엌에 냉장고만 있다면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거대한 전축 세트를 살 여력이 없었던 청춘세대는 포터블 턴테이블을 사 머리를 맞대고 LP를 들었다. 지금 50대인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는 이렇게 청년문화를 즐겼다.

 

LP하면 또, 음악다방이나 음악감상실의 풍경이 떠오른다. 요즘이야 이어폰으로 각자 음악을 듣지만 과거엔 감상실 등지에 모여서 음악감상을 했었다. 그런 곳에는 신청곡을 받는 DJ가 있었고, DJ가 헤드폰을 쓴 채 LP를 들고 있는 사진들이 그 시절을 대표한다.

 

그러다 CD혁명이 터졌다. 크고 무겁고 잘 상하고 잡음도 많은 LP에 비해, 편리하고 잡음도 없는 신기한 매체의 등장. CD는 고음질을 과시하기 위해 클래식 시장을 중시했고, 클래식하면 베토벤, 베토벤하면 ‘합창’ 교향곡, 그걸 가장 길게 연주한 사람은 푸르트벵글러, 그래서 푸르트벵글러의 ‘합창’을 담을 수 있도록 직경이 12센티미터로 정해졌다. CD 가운데의 홈은 네덜란드 10센트 동전 크기에 맞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기묘한 빛을 발하는 12센티미터짜리 원반이 아날로그를 밀어내버렸다.

 

 

 

◆잡음을 우습게 보지 마라

 

잡음이 바로 인간이다. 티 없는 인간이 어디 있으며, 완전무결한 삶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CD가 잡음을 몰아낸 직후부터 격렬한 저항이 전개됐다. CD의 디지털이 진정으로 몰아낸 건 음향잡음이 아니라 바로 인간미 그 자체라는 반발이었다. 그 기계적인 깔끔함과 편리함도 정이 안 갔다. 설상가상으로 음질도 의심받기 시작했다. 디지털이 아무리 좋아봐야 0101부호의 디지털이지, 그게 어떻게 자연의 소리를 대체한단 말인가?

 

또 디지털은 덧없다. CD가 했던 영원에의 약속은 ‘사기’였음이 밝혀졌다. 이젠 음원을 통해 디지털에서의 물질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일개 소비상품이 되어간다. 결국 정 붙이고 오래 곁에 둘 대상으로 아날로그 LP가 다시 떠올랐다.

 

더군다나 21세기는 ‘인간잡음’ 제거의 시대. 즉 구조조정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LP의 잡음을 통해서 위안을 얻게 됐다. 불편함은 ‘슬로우’의 시대와 조응했다. 게다가 한땐 퇴물이었지만 이젠 고급스러움의 이미지까지 생겼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21세기에 LP를 호출한다. 당분간 LP 시장은 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LP의 호사를 누릴만한 돈이 있을까? 이 부분이 아픈 문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