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섹시코드가 여성을 공격한다

 

얼마 전 방송인 클라라의 섹시시구가 큰 화제로 떠올랐었다. 클라라는 그 전까지 그렇게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는데 섹시시구와 야한 의상으로 포털 사이트 메인에 일주일 내내 걸려있다시피 하면서 인생역전 수준의 인지도 상승을 겪었다. 섹시시구의 이 엄청난 위력을 지켜본 사람들에 의해 섹시의 바람이 더욱 강하게 불 것으로 보인다.

 

섹시 열풍에 편승하려는 건 연예인뿐만이 아니다. 섹시시구에 엄청난 클릭수와 댓글이 몰린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유사 사례를 찾으려는 언론매체와 포털의 노력도 뜨거워질 것이다. 연예인과 그를 띄우려는 기획사, 그리고 클릭수를 노리는 포털과 언론의 ‘4자 연대’가 섹시 앞으로 ‘헤쳐모여’하는 형국이다.

 

비슷한 사례는 레드카펫 쪽에도 있었다. 김혜수가 레드카펫 노출의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은 이래, 레드카펫은 일종의 섹시 경연장 역할을 해왔다. 이런 경향은 2년 전에 절정에 달해서,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등장했던 오인혜의 노출드레스가 영화제 기간 내내 영화제에 참여한 그 모든 작품, 감독들을 덮어버렸었다. ‘오인혜의 난’이었다고나 할까? 그 일로 오인혜는 비약적인 인지도 상승을 겪었고, 이후 레드카펫에선 더욱 강도 높은 섹시의 경쟁이 펼쳐졌다. 치열한 작품성, 연기력, 그 어느 것도 섹시드레스 앞에선 빛을 잃었다.

 

 

 

◆섹시에 열광하다

 

요즘엔 여자 기상캐스터나 스포츠 아나운서, 스포츠 리포터 등이 섹시의 대명사로 각광받는다. 특히 인터넷에서 기상캐스터를 비롯한 아나운서의 의상과 몸매를 집중 체크하는 사람들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섹시에 열광하고, 연예인이 섹시를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의 일이다. 그 전까지 한국은 섹시라는 말조차 공식적으로는 할 수 없는 나라였고, 여성에게 섹시하다고 말하는 것이 일종의 모욕으로 간주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 모든 상황이 바뀌기 시작해 요즘엔 여성들이 섹시하다는 말을 아주 기분 좋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민주화 이후의 자유화 바람 때문이다. 그 전까지 한국은 억압적인 분위기였는데, 그것은 풍속의 영역에서 도덕적 엄숙주의로 나타났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지도층들은 ‘허리 아래의 일은 묻지 않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다. 이런 이중적 태도와 억압에 답답함을 느끼던 사람들은 차라리 드러내놓고 성적인 욕망을 표현하는 것을 더 당당한 태도로 여겼다.

 

이때 박진영이 나타났다. 박진영은 우리 사회가 항상 쉬쉬하며 감춰왔던 성을 드러내놓고 표현해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DJ DOC나 싸이도 솔직한 욕망 드러내기로 이슈가 됐다. 90년대에는 <경마장 가는 길>이나 <너에게 나를 보낸다> 같은 성인영화들이 ‘핫’하고 ‘쿨’한 영화로 찬사를 받기도 했었다.

 

김혜수의 노출드레스가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것은 이런 분위기에서였다. 그 전까지 여배우의 노출은 일종의 금기였고, 싸구려 혹은 퇴폐적 이미지와 연결되는 행위였다. 톱스타가 할 행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과 욕망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자, 김혜수의 노출드레스는 당당한 신여성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릴 때쯤 되면 일반인들도 섹시한 신체를 내세우기 시작한다. 당시 노출의상을 입은 각종 ‘응원녀’ 사진들이 인터넷을 달궜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도, 퇴폐성을 걱정하기보다 신세대 젊은이들의 당당함을 찬탄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성적인 대상화로 인한 여성지위의 하락

 

상황이 이렇다보니 연예인들도 섹시 마케팅에 주저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결국 아나운서, 배우, 가수 할 것 없이 모두가 섹시로 뜨는 시대가 된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상업주의의 시대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성공만 하면, 돈만 벌면 되는 시대에 노출은 저비용고효율의 성공코드였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이 섹시코드로만 부각되면 인간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클라라 시구나 오인혜 의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화제가 여성의 섹시코드에 집중되는 분위기인데, 이러면 여성을 인격적 주체가 아닌 성적인 대상으로만 여기는 악습이 강화될 것이다.

 

최근 한 여성 기상캐스터가 자신이 그 일을 하기 위해 힘들게 공부해서 전문적인 소양을 갖췄는데 사람들은 오직 몸에만 관심이 있더라는 한탄을 했었다. 얼마 전엔 청와대 고위직 인사가 여성 인턴을 몸으로만 대해서 나라망신까지 당했다. 성상납도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온갖 성추행이 대부분 그렇다. 여성이 섹시코드를 통해 전국적인 화제가 되는 일이 반복되면, 이런 악습의 원인이 되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요즘엔 여성들이 여성의 섹시코드를 멋있다고 찬탄하는 분위기인데, 이런 현상은 여성에게 그다지 이롭지 않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결국 여성 사회적 지위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