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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4050, 중년의 반격이 시작됐다

 

최근 조용필의 부활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청춘의 우상이었던 조용필을 옛 가수로 만든 건 ‘서태지 혁명’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신드롬 이후 조용필을 비롯해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들이 한꺼번에 ‘구닥다리’가 됐다. 예컨대 ‘가요톱텐’에서 십주 연속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던 김민우는 신드롬 직전에 입대했는데, 제대하고 나니 세상이 바뀌어 자신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고 했다.

 

바뀐 세상은 바로 10대의 승리, 즉 HOT(High-five Of Teenager)의 세상이었다. HOT를 ‘핫’으로 읽느냐 ‘에쵸티’로 읽느냐에 따라 세대가 갈렸는데, ‘핫’으로 읽었던 구세대는 대중문화계에서 밀려난다. 어린 팬들은 젊은 세대의 문화에 조금이라도 딴지를 거는 사람이 보이면 집단적인 저격에 나섰고, 방송가에선 신세대 문화에 뒤쳐진 사람을 퇴물 취급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구세대는 아예 대중문화판을 떠나버린다. 2000년대에 접어든 이후 십여 년 간 한국 대중문화계는 젊은 세대가 형성한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됐다. 그것을 대표하는 풍경이 아이돌만 남은 가요계였는데, 아이돌이 국민가수로까지 격상됐던 바로 그 즈음에 4050 세대의 반격이 시작됐다.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는 4050 세대의 반격

 

그 반격이 소리소문 없이 이어지더니, 지금은 대중문화계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까지 세가 성장했다. 그걸 상징하는 것이 바로 조용필의 귀환이다. 만약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한참 열풍을 일으키며 국민가수 소리까지 듣던 무렵이었다면, 지금의 신드롬은 없었을 것이다. 동방신기의 80만 팬클럽이 기세등등하게 구세대를 저격하던 시절(2000년대 초)였다면 더욱 어림없었을 것이다. 조용필 신드롬은 2013년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건이었다.

 

조용필에 열렬히 환호하며 삽시간에 앨범 20만 장을 사들인 대중은 4050 세대가 그 주축을 이룬다. 4050 세대의 뜨거운 환호는 단지 조용필을 향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동방신기’ 세상에 박대당하며 살았던 세월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그것은 한국 문화계의 최전선에 자신들이 다시 나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영화계에서도 4050 세대의 영향력 확대가 두드러진다.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의 2012년 예매 관객 비율에선 40대가 25.8%로 20대의 20.1%를 앞질렀다. ‘7번방의 선물’이나 ‘레미제라블’에서도 40대 이상의 예매율이 높았다. 그동안 영화 트렌드는 의례히 2030 세대의 취향이라고 분석됐었는데, 작년부터 그 공식이 깨지면서 4050 세대가 영화판의 큰손으로 부각된 것이다.

 

2030 세대의 여성이 주도한다고 알려진 뮤지컬 쪽에서도 4050 세대의 약진이 나타난다. 요즘 뮤지컬 기획자들 사이에선 ‘대형뮤지컬은 중장년 관객을 잡아야 성공한다’는 불문율이 통한다고 한다. 대중음악 공연에서도 4050 세대의 참여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서점가에서도 30대 이하의 구매율이 줄어드는 반면, 40 이상의 구매율은 늘어나는 추세다. 그에 따라 작년엔 중년 세대를 대상으로 한 책들이 대거 출판됐다. 화장품업계나 패션업계에서도 중장년층을 주목하고 있다. 50대의 비약적인 도약은 지난 대선, 정치권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다. 요즘엔 TV프로그램들도 중장년층의 눈치를 가장 많이 본다. 아날로그, 복고 열풍도 이런 흐름과 관련이 깊다.

 

 

 

◆젊은 세대도 변했다

 

4050 세대의 움직임이 이렇게 큰 파급력을 가지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1,2차 베이비붐 세대이기 때문에 당연히 인구가 많고 게다가 젊은 세대보다 경제적인 여유까지 있다. 또 이들은 그 전 세대와는 달리 서구문화의 세례를 받고 청년문화를 향유했었기 때문에 문화적 활동에 적극적이다. 여기까지만이라면 단지 4050 세대만의 특화된 시장이 나타나는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는 좀 더 파괴적이다.

 

얼마 전 동네 공원에서 10대 후반 청소년들이 이문세 노래를 틀어놓고 함께 부르는 모습을 봤다. 몇 년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광경이다. 지난 십수년 간 구세대 문화를 공격했던 젊은 세대에게 이젠 4050 세대 문화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그래서 4050 세대의 귀환이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지 않고 한국 대중문화지형 전체를 흔들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조용필의 인터넷 신드롬을 주도한 건 20대였다. 홍대에선 20대가 복고클럽 앞에서 줄을 선다. 얼마 전 있었던 ‘서울 레코드페어’ 행사장엔 20대가 카메라를 들고 대거 등장했다. 신세대문화 전성기 때 기성세대가 신세대 따라잡기에 애쓰던 풍경이 역전된 것이다. 많은 인구, 경제력, 게다가 젊은층의 추종까지 나타나고 있으니 4050 세대의 문화반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편 이런 흐름은 역 세대차별 논란을 부를 우려가 있다. 정치권에선 지난 대선 이후 젊은층의 소외감, 기성세대의 힘에 대한 반발이 첨예하게 나타난다. TV가 중장년 위주로 가는 것에 대한 반발도 크다. 공연, 영화까지 중장년 위주로 가면 젊은층의 반발이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런 불만이 누적되면 다시 일체의 기성문화를 거부하는 파괴적 신세대문화가 나타날 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