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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진짜사나이, 도대체 왜 연예인이 유격을 해야 하나

<진짜사나이>에서 유격훈련 받는 모습이 방영됐다. 이에 대해 재미있었다거나 감동적이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훈련병들이 사력을 다해 훈련에 임하는 모습이나 전우를 챙겨주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줬다.

 

이건 극한상황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의 격동이다. 만약 편안하게 앉아서 얘기하거나 소소한 게임이나 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샘해밍턴이 ‘어머니가 계십니다’라고 하며 울먹일 일도 없고, 시청자도 그런 말에 감동 받지 않았을 것이다.

 

박형식이 밧줄 도하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자원해서 끝내 성공하는 모습도 감동이었는데, 이건 그 전에 흙탕물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고난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감정이었다. 만약 <1박2일>이나 <런닝맨> 같은 연예인 게임 프로그램에서의 재도전이었다면 전혀 나타나지 않았을 감동이다.

 

철봉 도하 엮어가기에서 샘해밍턴이 악전고투 끝에 도하에 성공했을 때도 역시 감동이었다. 사투를 벌이는 샘해밍턴과 목이 터져라 ‘전우야 힘내라’를 외치는 전우들, 그리고 샘해밍턴의 다리를 받쳐주는 장혁, 모두 감동적이었는데 이 역시도 그렇다. 일반적인 연예인 게임 프로그램이었다면 철봉 사다리 하나 건넜다고 감동이 나타나진 않았을 것이다.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연예인들을 극한상황으로 몰아넣어서 연예인들이 연예인으로서의 자각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원초적인 인간 그 자체인 상태가 된 것, 바로 이때 웃음과 감동이 터져나오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왜 연예인이 극한상황에서 악전고투를 해야 한단 말인가? 왜 시청자가 연예인들이 사투를 벌이는 광경을 보며 재미를 느껴야 한단 말인가?

 

극한상황이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체험이나 감정의 격동은 당연히 재밌다. 이런 원리로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 시청자를 격동시키는 드라마가 바로 막장드라마다. 막장드라마의 독한 설정은 시청자를 강렬하게 자극한다. 이런 자극에 익숙해진 사람은 평이한 설정의 작품을 보기가 힘들어진다.

 

예능에서도 연예인의 고생을 통해 시청자를 자극하는 그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한 몇 년 전만 해도 리얼버라이어티 예능에서 가학성 논란이 종종 터졌었지만 요즘엔 그때보다 훨씬 강도 높은 생고생이 나오는데도 가학성 논란 같은 건 없다. 그저 진정성만을 따진다. 진짜 고생이냐 가짜 고생이냐. 이것만이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연예인이 왜 고생을 해야 하느냐는 의문은 사라져버린다. 왜 연예인이 부상의 위험까지 감수해가며 생고생을 해야 하는 걸까? 왜 40 전후의 사람들이 이등병이 돼야 하는 걸까? 왜 이 시대는 이전 시대에 비해 그런 생고생을 보며 박장대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진짜 사나이> 출연자들은 처음 출연했을 때 하차를 고민했다고 했다. 너무 고생스럽고 인격적인 모멸감까지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청자의 열화와 같은 반응이 그들로 하여금 기꺼이 프로그램 출연을 계속 하도록 만들었다. 표면적인 구도는 연예인들이 좋아서 출연하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시청자의 명령에 그들이 울며겨자먹기로 지옥행을 선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청자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서경석 같은 토크형 MC가 생고생 리얼버라이어티에 자원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오직 생고생! 좀더 생고생!’만을 외치고 있기 때문에 방송사는 연예인을 모집해 생고생 원정대를 꾸미는 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글의 법칙> 같은 성공적인 생고생 프로그램은 <진짜사나이>처럼 극한상황에서의 감정의 격동이 나타나며 시청자를 자극한다. 지난 주엔 오지은이 울었고, 그 전 뉴질랜드편에선 박보영이 울었다. 상황이 이러니 <맨발의 친구들> 같은 평이한 고생 프로그램은 연예인 관광이냐는 비아냥이나 듣는다. 한때 야생 수컷이라며 생고생 트렌드를 선도했던 강호동은, 이젠 더욱 강한 생고생에 밀려나 관광가이드 신세가 됐다.

 

연예인이 관광 이상의 고생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고, 그런 고생을 오락거리로 느끼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진짜 사나이>는 고생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려 생고생 혁명을 감행했고 그 결과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대로 가면 더욱 강한 생고생이 나올 것이다.

 

이건 위험성이 점점 커진다는 얘기다. <정글의법칙>에서도 종종 피를 보는 장면이나, 사람이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진짜사나이>에선 지난 방영분에서 미르가 허리의 고통 때문에 몸을 제대로 못 펴면서도 훈련을 받는 모습이 나왔고, 이번엔 결국 김수로가 쓰러졌다. 동료들이 생고생하는 모습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진 김수로가 자원을 하게 된 것이고, 제작진이 당연히 못 하게 했어야 하는데 고생과 리얼리티만 신경쓰다보니 연기자 배려/통제를 못해서 터진 일이다. 물론 그 배후에는 강력한 생고생을 원하는 시청자의 냉혹한 요구가 있다. 우리가 마치 원형경기장에 앉아 피 보기를 요구했던 로마시민들처럼 타인의 고통을 오락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돼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