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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손연재를 미워하는 사람들

 

손연재에 대한 악플 열기가 뜨겁다. 손연재 기사엔 언제나 악플이 달리고, 악플러와 손연재 팬과의 싸움도 뜨겁다. 보통 인기스타의 경우 방송에서 안 좋은 얘기가 나오면 인터넷 게시판에서 그 반발이 터지지만, 손연재의 경우엔 방송에서 좋게 얘기하면 게시판에서 반발이 터져나온다.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는 자국의 국가대표를 네티즌이 증오하는 상황, 이것이 정상일까?

 

리듬체조 분야에서 한국은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었다. 리듬체조 경기를 보면 서구 인종의 독무대 속에서 동아시아 인종은 거의 존재감 자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가운데에 손연재가 국제 무대에서 톱 10 안에 들어가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뒀다. 신체도 서구 인종 못지않게 ‘길쭉길쭉’해 보여서 한국인이 서양에 대해 느끼는 신체 콤플렉스를 보상해주는 면도 있다. 이것만 가지고도 국민들에게 주목 받을 이유는 충분했다. 많은 이들에게 손연재는 대견하고, 깜찍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됐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세계 1위도 아닌, 금메달도 못 딴 손연재가 그런 인기를 누리는 걸 불쾌하게 여기고 손연재 기사만 나오면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그런 불쾌함이 결국 집단적 증오로까지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즉 손연재 얘기만 나와도 기분이 나빠지고, 손연재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미워보이는 현상 말이다.

 

 

 

◆손연재는 ‘짝퉁’ 국민영웅?

 

김연아와 손연재는 모두 춤 종목의 미소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은 아이돌과 유사한 특징이어서 두 선수에겐 일반적인 운동선수의 수준을 뛰어넘는 아이돌과 같은 팬덤이 생겼다. 한국 아이돌 팬덤의 특징은 섬뜩할 정도의 극렬함이다. 자신들의 우상에겐 맹목적인 찬사를 바치고, 그 라이벌에겐 적개심을 불태운다. 일부 김연아 팬덤에겐 손연재가 그 적개심의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김연아의 국민영웅이라는 특징도 팬덤의 극렬함이 나타나는 이유가 된다. 한 스포츠평론가는 자신이 매체에서 김연아에 대해 조금 안 좋게 이야기한 후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으며, 비난 폭주로 매체 서버가 다운됐을 정도라고 증언했다. 그런 극렬한 국민영웅 (일부) 팬덤이 보기에 손연재는, 국민영웅이 아닌데도(세계1위를 못했으니까) 국민영웅 흉내를 내는 ‘짝퉁’일 뿐이었다.

 

과거 동아시아 국가들이 월드컵에서 아무 힘도 못 쓰던 시절엔 월드컵 16강만 해도 국민영웅이라고 했었다. 오죽하면 월드컵 16강에 병역면제가 걸려있었겠는가. 조오련, 최윤희, 장재근도 세계 1위하고는 거리가 대단히 멀었지만 국민영웅 대우를 받았다. 사람들이 종목의 특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손연재가 올림픽 메달을 못 땄다며 비난한다. 1등 숭배가 옛날보다 더 강해졌다.

 

두 선수는 종목 자체가 다르다. 라이벌이 아니란 얘기다. 둘 다 ‘위너’일 수 있는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이 둘 중에서 굳이 ‘위너’와 ‘루저’를 가리려고 한다. 한 쪽이 빛을 받으면 그것이 바로 다른 쪽의 피해라고 생각한다. 한 쪽이 빛나려면 다른 쪽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승자독식주의, 경쟁과열의 문제가 팬덤문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손연재는 욕 먹어야 할 언플마녀인가?

 

김연아 팬덤만 손연재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네티즌도 손연재 비난에 가담한다. 손연재 기사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고 그 내용도 너무 미화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연재는 실력도 없으면서 홍보만 요란하게 하는 ‘언플마녀’로 미움의 대상이 됐다. 손연재가 ‘언플’(언론홍보)로 국민의 관심을 다 끌어가버린 바람에 역도나 사격 같은 수수한 종목의 금메달리스트들은 방치됐다고 분개한다. 악플의 대표적 형태인 ‘정의 추구형 악플’이다.

 

손연재 기사가 자꾸 눈에 띄는 건 매체가 수시로 기사를 쓰고, 그것을 포털이 잘 보이게 걸어주기 때문이다. 매체와 포털이 그러는 건 손연재에게 인기가 있기 때문이다. 손연재의 이례적인 인기는 상당 부분 외모에서 비롯됐다. 매체는 ‘인기 미소녀’를 절대적으로 애호한다. 그러므로 손연재 기사는 언론의 호들갑 때문에 부풀려진 내용으로 자주 나올 수밖에 없다. 이 구조에서 손연재는 매체와 포털의 이익이 굴러가기 위해 소모되는 연료와 같은 존재다. 손연재는 이런 구조를 만든 책임당사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 눈에 띄는 손연재 기사가 거슬린다는 이유로 손연재에게 증오를 폭발시키는 형국이다.

 

매체에 의한 미녀들의 약진과 그에 따른 실력파의 소외현상은 그전부터 있어왔던 병폐다. 특히 외모지상주의가 활개친 이후에 더 심해졌다. 매체가 외모 중심으로 캐스팅이나 보도 가치를 정하고, 소비자도 외모 중심으로 선호도를 정하는 체제. 손연재 스타덤을 포함한 각종 미남미녀 스타덤, 얼짱신드롬은 모두 이런 배경을 공유한다. 이런 체제에 문제제기하고 소외된 실력파를 조명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왜 그것이 손연재 증오의 형태로 나타나야 한단 말인가? 구조에 의한 분노를 개인에 대한 분풀이로 푸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손연재는 열심히 운동하는 운동선수일 뿐, ‘언플마녀’가 아니란 점을 유념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