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연예병사파문, 몸통은 따로 있다

현역 연예인 사병이 한밤중에 성인업소에 가는 모습이 TV로 방영되는 희대의 사건이 터졌다. 당연히 인터넷은 분노로 들끓고 있다. 원래부터 연예병사 즉, 홍보지원대원에 대해 불편한 정서가 많았던 터라 분노는 클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로도 이번에 물의를 일으킨 그 연예병사들을 옹호할 순 없다. 그들은 분명히 잘못했다. 현역 군인이 복무 중에 자유롭게 시내를 배회하고, 술을 마시며, 휴대폰을 쓰고, 성인업소에 출입했다. 이것은 심각한 군기강해이 사태다.

 

최필립이 SNS에 취재진을 비난해서 역풍을 맞았다. 나도 방송화면이 마치 사생활 몰카 같아서 너무 괴로웠고(계속 보기가 힘들어서 몇 번이나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가학적인 느낌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찍힌 해당자들이 민간인이 아닌 현역 군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건 사생활 몰카가 아닌 공적 영역에 대한 고발이다. 이번에 방영된 연예병사들의 행태는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이런 꼴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번 일로 해당 병사들을, 특히 카메라에 찍히지 않은 병사들까지 싸잡아 매장시킬 듯이 비난하는 것은 조금 과하다. 사람을 공격할 때는 정확히 사실로 드러난 것에서만 그 근거를 찾아야 한다. ‘너희도 다 똑같은 놈들이다. 안 봐도 뻔하다’ 이런 방식은 예기치 않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

 

젊은 혈기와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이 결합할 경우, 일반적인 사회인으로 생활할 때와는 조금 다른 도덕감각을 갖게 된다. 멀쩡하던 사람이 예비군복만 입으면 ‘찌질이’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군대는 전체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집단에 속하는 순간 개인의 윤리관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따라서 개인적 책임이 약해지게 된다. 인간은 개인적 책임이 사라지는 전체 속으로 편입되면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선량한 소시민도 집단 속에선 얼마든지 폭주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군대는 집단사회이기 때문에 어떤 행동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개개인 한 명 한 명에게 똑같이 책임지우기 힘든 측면도 있다. 외박, 휴가 나왔을 때 유흥일탈을 즐기는 건 전통적인 군사문화이기도 하다.

 

문제는 혈기방장한 젊은 사병들을 아무런 통제 없이 풀어놓았을 때, 얼마든지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걸 군 측에서 충분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짜사나이>를 보면 군이 훈련 이외의 평소 생활 영역까지 얼마나 세심하게 통제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병사들을 모텔에 방치했단 말인가? 그것도 보통 병사가 아니라 아무래도 일반인들보다는 더 끼가 많고 자유분방한 대중예술인들을 말이다. 문제가 안 생기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을 군이 만들어 준 것이다. 마치 일 터지라고 유도라도 한 것 같다.

 

바로 이 부분이 이번 사태의 몸통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에 방영된 그 병사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분명히 잘못했다. 문제는 그들을 포함한 연예병사들을 아무리 욕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 측의 관리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연예병사를 원했던 사람도 있겠지만, 군의 차출로 인해 그 자리로 들어간 사람도 있다. 비도 연예병사가 아닌 일반병으로 전환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그때 일반병으로 갔으면 이번에 이렇게 언급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즉, 군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홍보지원병을 운용하면서, 공연만 시킨 다음, 그 이후의 관리 책임에 대해선 나몰라라 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군 측에 지휘관리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

 

이 일로 연예병사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대중연예인은 상당히 특수한 직종이다. 한류로 인해 요즘은 우리나라의 전략산업이 된 부문이기도 하다. 이런 쪽의 주특기 보유자가 일반 병과에 있는 것보다는, 자기 특기를 살리면서 공연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한류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무조건 폐지보단 군의 철저한 관리를 요구하는 정도로 정리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국민정서법이다. 한국에서 병역은 국민정서상 가장 민감한 문제다. 상당수 국민이 연예병사들에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느낀다면 폐지까지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결국 군대의 주인은 국민이니까. 일이 이 지경까지 되도록 한 군 지휘부가 야속할 뿐이다. 올 초 연예병사 파동을 겪은 후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그 강화한 결과가 병사들을 모텔에 방치한 것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