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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홈런인증과 남자의 본능

 

남자는 참 괴로운 동물이다.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인생의 상당 기간 동안 전전긍긍한다. 여자에게 이렇다 할 호응을 얻지 못하면 열패감에 휩싸인다. 살인사건 중 상당수가 ‘질투’라는 감정과 연관된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 유혹하는 걸 자신의 존재감, 능력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여자에 관한한 다른 남자에 대해 아주 예민한 경쟁심을 가진다. 다른 남자가 자신과 여자에 대해 경쟁하는 상황이 되면 아주 깊은 곳에서 동물적인 분노가 솟구치기 때문에 이것이 살인사건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젊은 남자들은 모이면 의례히 여자 이야기를 한다. 남자들끼리 밤거리를 배회하거나 어딘가에 놀러갔을 경우, 여자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일이 허다하다. 여자에게 집중하느라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도 남자들은 그것을 이해한다. 만약 여자들의 모임이라면, 한 사람이 계속 남자들에게 신경 쓰느라 친구에게 소홀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남자들 사이에선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공감 예능 <롤러코스터>에 이런 심리가 잘 표현됐다. 여자들의 여행에선 친구들끼리 수다를 떨며 노는 반면, 남자들의 여행에선 여행 내내 여자를 찾아 헤매는 남자의 모습이 나왔었다. <낮술>이라는 영화에서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여자에게 정신을 뺐기며 여자 유혹할 궁리만 하는 남자의 심리가 잘 그려진 바 있다.

 

이런 남자의 ‘찌질함’에 천착하는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홍상수 감독이다. 홍 감독의 영화에서 남자는 오직 술과 여자에만 집착하는 동물이다. 눈앞에 나타난 여자를 어떻게든 유혹해 하룻밤을 보내려 하고, 그것을 위해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나버린다.

 

 

 

 

◆남자들의 정글, 클럽

 

클럽은 남자들의 이런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정글이다. 세렝게티 초원에서처럼 클럽에선 남자들이 서로의 영역을 정해 기싸움을 벌인다. 서로 자신이 점찍은 여자를 지키려 하고, 좀 더 여자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치열히 경쟁하며, 급기야 싸움을 벌인다든가, 주목 받기 위해 물건을 깨기도 한다. 그렇게 경쟁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여자를 유혹해 하룻밤을 보내려는 욕망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망신을 감수하면서도 수많은 여자들에게 말을 걸거나 부비부비를 시도하면서 ‘간을 본다’.

 

그런데 여자는 잘 넘어오지 않는다. 여자들은 남자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묘사된 바로 그런 동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거짓말에 속아 하룻밤을 허락했다가 남자가 떠나버리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방어막을 친다. 지금까지 설명한 행동들은 이성적 판단이 아닌 본능적 차원에서 벌이지는 일들이다.

 

남자는 정자가 무한대로 생산되는 동시에 임신을 직접 하지도 않기 때문에, 정자를 무한정 흩뿌리려는 성향을 갖는다. 반면에 여자의 난자는 매우 소중한 자원이다. 난자는 한 달에 단 한 개가 만들어지며 그것이 형성되는 시기도 매우 제한적이다. 게다가 여자는 자기 몸으로 임신을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수많은 부담이 생기는데, 특히 과거 문명 이전 사회에서 여자의 임신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남자는 하룻밤을 위해 끊임없이 여자를 유혹하고 여자는 방어하는 본능이 생겼다.

 

이것이 원시시대 이래 수만 년간 이어져온 인간 생태계의 모습이다. 수많은 남자들이 여자를 유혹하려다가 좌절하고 술로 그 화를 풀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남자의 공세가 훨씬 거세졌다. 남자들이 여자의 방어막을 뚫기 위해 단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인터넷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젠 여자를 유혹하기 위한 집단지성이 발동했다.

 

 

 

◆‘홈런 인증’하는 남자들

 

여자 전문가라는 픽업아티스트라는 사람들이 생겼고, 여기저기 픽업아티스트 카페가 나타났다. 여기서 남자들은 여자를 유혹하는 기술을 공유하며 발전시킨다. 그리고 마치 스포츠에 도전하듯 클럽으로 가 그 기술을 실전적용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홈런 인증’이라며 ‘홈런녀’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남자로서의 능력을 과시한다. 그리고 또 다른 홈런녀를 찾아 클럽을 배회한다. 이런 카페 문화는 앞에서 설명한 남자의 본능과 부합하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원래 남자들이 그런 존재이긴 했지만, 이것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집단적으로 부추겨짐으로서 훨씬 위험한 행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 범인도 자신이 여자 유혹하는 전문가라며 클럽을 배회하는 사람이었다. 상대 여성의 사진을 무단으로 게시했다가 경찰에 적발된 사례도 나왔다.

 

본능적 욕망이 윤리적 제어 없이 집단적으로, 그리고 경쟁적으로 표출되면 아주 위험해질 수 있다. 홈런 인증 문화가 바로 그렇다. 매체들이 픽업아티스트를 새로운 연예 풍속 정도로 여기고, 네티즌이 홈런 인증을 그저 가벼운 놀이 정도로 여긴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본능의 폭주를 다스려야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는 점을 명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