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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대학가요제 폐지, 꼭 이래야 했나

 

한국 대중문화계의 한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대학가요제가 폐지된다. MBC측 한 관계자는 ‘시대가 달라졌다.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시대가 달라져서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면, 인기 없는 프로그램은 다 없애야 하나?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흔적을 일순간의 경제논리로 너무 과감하게 지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식이면 백 년, 이백 년 가는 전통을 만들기가 어렵다.

 

방송사엔 방송사로서의 책무가 있다. 단순히 돈을 버는 사기업이 아닌 한국의 대중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기관이라는 책임 말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대학가요제와 같은 유서 깊은 프로그램을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전격 폐지하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오직 이윤만을 추구한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순수 사기업의 경우에도(사실은 순수 사기업도 이윤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지만), 어쨌든 그런 사기업의 경우에도 우리 사회는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 이런 요구에 대한 반대논리가 ‘인기주의’다.

 

스크린독점에 대해 극장주 측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인기 있는 영화 상영하고, 인기 없는 영화 치우는 데 무슨 문제냐?’이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에 대해서 대기업 측은 ‘우리 점포가 인기가 많은 반면, 일반 가게는 인기가 없어서 망하는 건데 무슨 문제냐?’라고 말한다.

 

이렇게 인기 따라 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에 대해 면죄부가 주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 최근의 사회적 합의다. 인기만을 따지다가 반드시 지켜져야 할 사회적 핵심 가치가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엔 순수 사기업에게도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서민업종, 골목상권은 침해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추세다. 영화산업 기업들에겐 영화의 다양성을 요구한다.

 

순수 사기업조차도 이런 상황인데 공적인 책무성을 가진 방송사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방송사쯤 되면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지킬 가치는 지켜야 한다.

 

대학가요제가 오디션에 밀려났다고 한다. 과거 대학가요제가 스타등용문의 역할을 했었는데 지금은 오디션과 기획사가 그 역할을 떠맡았기 때문에 대학가요제는 무의미해졌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오디션 프로그램은 연예인 지망생들의 경연장이다. 상업문화의 일부분인 것이다. 기획사의 아이돌 육성도 당연히 상업문화의 일부분이다. 대학가요제의 가치는 그런 상업성과 거리를 둔 청년문화의 장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 대학가요제를 지켜야 할 이유다. 오디션과 기획사 아이돌이 잘 나가니까 대학가요제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업적인 부문이 너무 잘 나가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대학가요제 같은 제3의 영역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지금 청년문화란 것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대학가요제가 청년문화를 담으려고 해도 담을 내용물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프로그램 폐지는 아쉽다.

 

독자적인 청년문화가 없으니까 대학가요제를 없앨 것이 아니라, 그런 게 없을수록 이런 프로그램을 지켜서 장차 청년문화가 터 잡을 수 있는 진지 역할을 하도록 했어야 했다. 인기 없다고, 돈 안 된다고, 시청률 떨어진다고 다 없애버리면 이 나라에 상업적 가치 이외에 어떤 것이 남게 될까? 상업적 가치만 남은 곳에서 문화가 융성할 수 있을까?

 

대학가요제가 유명무실해지도록 청년문화가 사라진 현실이 아쉽고, 현실이 그렇다고 프로그램을 전격 폐지하는 방송사의 결정도 아쉽다.